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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안수산 여사가 남긴 발자취

이재희/사회부 차장

지난 달 말 안수산 여사가 돌아가셨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여사를 모르는 한인은 없을 것이다.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딸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독립운동가요, 애국자였으며 개척자이자 선구자, 그리고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였고 어른이었다.

그는 안창호 선생의 뜻을 받들어 일제 치하 대한민국의 독립에 기여하기 위해 한인은 물론, 아시안 여성으로 처음, 미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성별과 인종의 차별을 딛고 2차 세계대전 중 여성, 아시안아메리칸으로 처음 해군 장교가 됐다.

그는 흥사단과 3.1여성회 등에서 활동하며 한인사회에 도산정신을 심었다. 돌아가시기 10여일 전에는 이경원리더십센터 기금모금 만찬에, 2일 전에는 한미연합회 전미대학생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해 차세대를 만나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100세의 나이에도 한인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한인사회의 리더였고 멘토였다. 한인 이민사와 한국 근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한인 이민사에는 큰 획을 그은 산증인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어찌 보면 한인 이민사의 한 장이 사라지는, 이민 1세대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과 같다.



안수산 여사가 돌아가시고 페이스북에는 추모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LA타임스 등도 그의 업적을 소개하며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막상, 이달 초 열린 고 안수사 여사의 장례식 조문객 수는 250~300명에 그쳤다. 기자는 1000명은 참석할 줄 알았다.

물론, 조문객 수로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인사회의 큰 어른을 보내는데 뭔가 아쉬웠다. 장례식에는 해군 사령관이 오고 서울에서 조문단이 왔다. 거물급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반면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1세 단체장은 많지 않았다고 했다.

먼저, 기자부터 반성한다. 돌아가시기 전, 취재 현장 등에서 만났을 때 살갑게 인사도 드리고 말씀 하나라도 더 들어놓을 걸 후회한다. 장례식 당일, 같은 시간에 다른 취재가 있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은 것도 후회한다. 안수산 여사와의 친분을 떠나 한인사회 어른을 보내는 자리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 참석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뒤늦은 후회를 한 것은 기자뿐만 아니다. 안수산 여사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처 몰랐던 이도 많다. '아차' 싶었을 것이다.

한인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얘기한다. 문득,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챙기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인사회에는 분명 어른이라 부를 만한 분들이 계신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몇 분 안 남으셨다는 것이다. 또 이 분들은 연세가 높다. 고 안수산 여사처럼 급작스레 가실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분들을 보낼 준비가 돼 있는지. 이 분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가실 때 잘 보내드릴 수 있다. 또 후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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