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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그인] 디지털 세대의 '햄릿 증후군'

최 주 미/조인스 아메리카 차장

처음에는 이게 다 뭘까 싶었다. 한 달 전쯤 페이스북의 미주 한인 그룹 몇 곳에 가입했는데 타임라인에 올려지는 소식들을 읽다가 갸우뚱 했다. 20~30대 한인들이 주고받는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흥미진진했지만 그 질문의 내용에는 자꾸 의구심이 생겼다.

그랜드캐년 가까운 곳에 이번 주말 묵을 수 있는 저렴하고 좋은 호텔 소개해 주세요, 스킨케어는 집에서 하나요 아니면 전문숍에서 받으시나요? 장거리 연애 4년 동안 가능할까요? 정말 급한데 아마존에 학교 텍스트 북 팔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실 분! 새 폰 살 건데 노트3 할까요 S5 할까요? 가족여행 3박이나 4박으로, 어디가 좋을까요. 장미꽃 사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죠?

말하자면 그랬다. 이런 건 물어보나마나 한 질문, 이건 각자 알아서 해결할 문제인데 싶었다. 세계적인 관광지의 주말 여행에 저렴하고 좋은 호텔이란 게 가능하려나, 4년 장거리 연애를 앞두고 갈등하는 심정은 알겠는데 남들이 가능하다 한들 내 애정과 인내심이 관건 아닌가, 아마존에 물건 파는 방법은 직접 해봐야 할 복잡한 프로세스인데 '급하게' 어떻게 배운다는 거지, 3박4일 가족여행은 가족끼리 취향대로 정할 때도 의견이 갈릴텐데 누가 뭘 조언해 준다고!

그런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묻고 또 각자 생각을 부담없이 대답한다. 질문이 불완전하니 대답도 일부 적용 일부 삭제, 알아서 취사 선택이 전제된 대답들로 오케이다. 꼭 필요한 정보인 경우에는 두세번 문답이 오가며 좀더 구체적인 결과를 내지만 대개는 '남들의 의견'을 한 보따리 불러다 들어보는 것으로 마감된다.



이른바 '결정장애'가 일반화된 '햄릿 증후군' 세대들의 흔한 생활 패턴인가 싶다. '아 몰랑~ 난 결정 못하겠어, 아무나 대신 정해줘~ 님들이 정해서 알려줘.'

전문가들은 이것을 초고속 변신 사회,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시대의 병리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오늘 확실했던 사실이 내일 뒤집어질 수도 있는 시대라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변수가 내 손 닿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도무지 확신과 명쾌한 결정이 불가능한 시절이라 그렇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또한 그런 한편으로, 너무나 많은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대, 각자 도생의 시대에 어지간한 것은 그저 남들의 선험에 묻어가고 싶은 피곤 세대의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해보고 실패하느니 먼저 해봤다는 그 누구가 설령 낯선 익명이라 해도 나보단 낫겠지 하는 이른바 안전빵의 심리일 수도 있다.

어떤 경로를 통했건 간에 구글링과 지식인 검색으로 사소한 일상에서 인생의 진로까지를 내내 물어물어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 우리들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에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놀랍고 새삼스러운 민주주의 수호다.

요즘 코리아데일리닷컴의 맛집 설문 투표가 화제다. LA한인타운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집은? 가장 맛있는 냉면집은? 삼계탕집은? 온라인으로 투표하고 다수결로 순위를 발표한다. 수많은 유저와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는 것 뿐 아니라 그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다는 점이 주목할 포인트다.

온갖 사소한 일상에서 학교, 직업, 결혼까지 매순간 무수한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 고단한 사회, 점심 한끼 뭐 먹을까 정하는 것쯤 이처럼 사소한 '컨닝 페이퍼'로 해결된다면 그나마 나른한 오후 달콤한 초콜렛 하나쯤의 위안은 얻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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