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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오늘도 나는 하염없이 부딪친다

[LA중앙일보] 발행 2015/07/28 미주판 28면 기사입력 2015/07/27 17:51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인간존재의 근거를 생각이라는 이성적 사고라고 주장하며, 생각을 존재의 전제로 삼았던 철학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정언명제이다. 이를 패러디한 익살스런 다양한 명제들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관념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으로부터 탈피를 강조하며 모든 가치를 유용성의 입장에서, 일상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취하는 것을 바람직한 삶의 가치로 여기는 실용주의자들은 '나는 소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주창했다.

또한 포토 몽타주 작가 바바라 크루거는 현대의 소비만능주의에 뇌동하여 쇼핑(소비)을 하지 않으면 자신을 확인할 수 없는 쇼핑중독자들을 빗대어, 그의 작품 속에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글귀를 새겨 넣기도 했다.

특히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빅 브라더는 인터넷과 스마트 폰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이다. 시인 이원은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고 읊음으로써, 클릭과 클릭으로 연결되는 세상, 기계와 부호로 버무려지는 인간 부재의 냉혹한 현실을 감각적 시어로 엮어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즈음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지극히 유용하지만 무정스런 '접속'만이 아니라, 점점 잊혀져 가는 다감한 '접촉'이겠다.

'나는 부딪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불교존재론의 명제이다. 부딪침(접촉)이 존재의 근거가 되는 촉(觸)의 철학이다. 인간의 눈, 귀, 코 등의 내적 감각기관이 그와 상응하는 형태와 색, 소리, 냄새 등의 외적대상과 부딪치면 각 감관에 식(識)이라는 알음알이가 발생한다. 감관과 대상과 식, 이 세 가지 화합의 통일장이 촉의 영역이다.

촉에서는 외부에 무엇이 있다는 인식이 일어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존재를 구성하기에 촉은 존재성립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나 이외의 존재는 나의 감각과 지각에 의해서만 성립된다. 그 촉을 이어 존재에 대한 느낌이 있고 느끼는 그것을 지각하며 지각하는 그것과 실천적 관계를 맺으려는 의도와 앞의 경험들을 분별, 판단하는 의식작용이 일어난다. 이런 과정은 '나'가 보고, 느끼고 지각한다는 주관적 망정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확대 재생산되어 불변의 자아 관념으로 고착된다.

'나'에 관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사유를 빌려 부연하면, 나란 형이상학적 불멸의 실체로써 고정된 명사적 패턴이 아니라, 마음의 역동적 관계로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 구조물로써 동사적 패턴이며 '경험적인 나' 일뿐인 것이다.

결국 나와 존재는 의식의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로써 '의식의 존재화'이다. 실로 세계는 매트릭스(가상)세계와 다름 아니다. 아무튼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어서, 오늘도 나는 하염없이 부딪친다. 고로 존재하기에 이 생명 다할 때까지.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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