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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자동차 천국에 '흠집 내기'

이종호/논설위원

미국은 자동차 천국이다. 차가 곧 생활이고 문화다. 연방교통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미국의 등록 차량은 2억5460만대에 이른다. 성인 한 사람에 차 1대, 혹은 한 집에 2~3대 꼴이다. 어딜 가나 자동차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유다. 자동차와 관련해 나도 최근 몇 가지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좋은 경험 둘, 가슴 아린 얘기 하나다.

하나. 올 초 한인타운에서 주차 위반 티켓을 받았다. 어, 여긴 아닌데 하는 곳에서다. 노란 선, 로딩존 위반이란다. 주위 어디를 봐도 그런 표식이 없었다. 노란 줄도 거의 퇴색되어 분간이 어려웠다.

티켓을 보니 억울하면 따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이럴 때 안 하면 언제 항의해보나, 하는 마음으로 현장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티켓이 부당하다는 이유를 간단히 적어 사진과 함께 관계당국으로 보냈다

2주쯤 뒤 답장이 왔다. 불복이유서가 잘 접수됐으니 기다리란다. 그로부터 6개월쯤 지났을까, 지난 주 최종 답장이 왔다. 미국서 살다 보면 우편물 치고 달가운 건 별로 없다. 죄다 돈 달라는 청구서 아니면 돈 쓰라는 광고 편지뿐이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내용인 즉, 너의 불복 이유서를 충분히 검토 조사해 본 결과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로 벌금은 안 내도 된다, 먼저 냈다면 돌려주겠다, 였다. 오, 예~. 이런 반가울 데가. 될 듯 말 듯 하면서도 결국은 다 되는 나라가 미국이라더니 정말 그렇네, 라며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여기서 배운 미국 생활 지혜 하나. 아니다 싶으면 따져 보라. 단, 명확한 근거는 들이댈 것. 하나 더. 무엇이든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려라. 안달한다고 더 빨리 되는 것은 없다.

둘. 지난 주말 볼 일이 있어 급히 시카고에 다녀왔다. 미네소타에서 차를 빌려 위스콘신을 거쳐 일리노이까지 달렸는데 시카고 인접부터 통행료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프리웨이, 공짜도로에 길들여진 탓에 아뿔싸, 첫 톨게이트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찜찜했다. 내 차도 아닌데.

얼마를 가니 또 톨게이트가 나왔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는 심정으로 물어봤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본의 아니게 돈 안내고 그냥 왔다, 여기서라도 내면 안 될까? 직원이 대답했다. 너 큰일 났다. 딱 티켓이다. 밧(But)! 걱정마라. 내가 도와주마. 그러더니 씨익 웃으며 작은 종이를 하나 내민다. 웹사이트로 내면 된다는 안내문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날 저녁 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차량 정보와 함께 어디를 언제쯤 통과했는지를 적고 못낸 통행료를 냈다. 1달러90센트. 벌금도 이자도 전혀 없이 원금 그대로였다. 휴~, 안심. (그냥 뭉개면 1주일 뒤에는 가차없이 벌금 티켓이 날아간다는 경고가 있었다).

이 일로 깨달은 미국 생활의 또 다른 지혜 하나. 법과 제도는 최대한 지켜라. 혹시 실수로 못지켰다 해도 낙담하진 말자. 얼마든지 만회의 기회가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단, 양심불량자는 예외라는 것은 꼭 기억할 것.

끝으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지난 주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볼일을 보고 왔는데 누군가 차 문짝을 큼지막하게 긁어놓고 사라졌다. 아무런 연락처나 메모도 없었다. 아마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요즘 온 천지에 CCTV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분이거나, 아니면 남의 차 긁는 줄도 감지하지 못할 만큼 무딘 분이거나.

이 일로 요 며칠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라도 의뢰해(?) 범인을 찾아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운이 나빴으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나.

어쨌든 이 일로도 느낀 바가 크다. "아무리 자동차 문화와 시스템이 발달돼 있으면 뭐하나. 사람이 늘 문제인 걸"이 그것이다. 자동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론은 또사람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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