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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부원배와 친일파

이종호/논설위원

뜨거운 한 주일이 지났다. 날도 뜨겁고 광복 70년 축하 물결도 뜨거웠다. 극장에선 독립군의 활약과 친일파 응징을 그린 영화 '암살'이 관객 1000만을 돌파했다. 인터넷에선 친일 청산 실패에 대한 성토와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대를 물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는 특집 기사였다.

700년 전 고려 때도 그랬다. 13세기 초 고려는 몽골의 침략을 받았다. 한두 번이 아닌 무려 일곱 번에 걸친 대침략이었다. 고려는 강화도로 조정을 옮겨가며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불력(佛力)에 호소해 가며 저항했다. 삼별초를 비롯해 온 백성들이 목숨 내놓고 싸웠다. 하지만 역부족. 이미 세계제국이 된 몽골군의 말발굽 아래 결국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장장 98년 시시콜콜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다. 풍습이 바뀌고 언어가 물들었다. 피가 섞이고 민족정신도 희미해져갔다. 일제 36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세월을 되돌려 바로 잡으려 한 사람이 공민왕(재위 1351~1374)이다. 그의 꿈은 '자주 고려'였다. 이를 위해 기철 등 친원세력부터 척결했다. 원나라 풍습과 제도를 철저히 금했다. 철령 이북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빼앗긴 땅도 되찾았다. 하지만 개혁은 벽에 부딪쳤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부원배(附元輩)들의 필사적 저항 때문이었다. 결국 개혁은 실패했다. 공민왕은 좌절했고 고려는 멸망의 길로 내닫고 말았다. 그럼에도 부원배는 건재했다. 권문세족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영화를 누렸다.

역사는 되풀이됐다. 36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던 날 모두가 새 나라를 꿈꿨다. 그 첫걸음이 민족반역자 처단이었다. 이를 위해 제헌국회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금세 흐지부지됐다. 분단이 핑계였다. 친일청산보다 좌익 견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친일 전력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의 경험이 요긴한 무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친일파 대부분이 신생 대한민국의 중추세력으로 다시 편입됐다. 그리고 그 아들 손자들이 좋은 교육 받고 좋은 직장 물려받아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



친일의 역사는 분명히 기억돼야 한다. 70년이 아니라 100년 200년이 가도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번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로 잡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더 결정적인 것은 지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계 법조계 재계 언론계의 내로라하는 사람(기업) 치고 친일 선조의 후광을 입지 않은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한국은 더 이상 친일청산을 해 낼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부원배는 '원나라에 빌붙어 사는 놈들'이라는 모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새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 말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 후손들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태종 이방원의 시조에 나오는 구절 그대로 만수산 드렁 칡같이 얽혀 다시 조선의 지도층으로 대부분 수평 이동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도태되지 않고 이름만 바꿔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친일파도 그렇다. 친일-우익-보수의 줄을 타고 일제 식민지 상층부에서 대한민국 상층부로 아주 성공적으로(?) 이동했다. 이제 '친일파 후손'이라는 수치스러운딱지 털어내는 일만 남았다. 모르긴 해도 저들은 머지않아 그것마저 기어코 이뤄낼 것이다. 우린 한 배를 탔다 자칫 소모적인 친일청산 논쟁만 하다보면 배 자체가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 앞에 순박한 민초들이 먼저 물러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원배 청산에 실패한 고려는 끝내 망했다. 이 시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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