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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미터법 거부하는 미국의 고집

[LA중앙일보] 발행 2015/08/19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8/18 17:00

김완신/논설실장

미국에 처음 와서 생소하게 느꼈던 것 중의 하나가 '쿼터'라는 동전이었다. 이유는 '25센트'라는 점 때문이었다.

한국의 화폐 단위는 미터법(Metric system)의 영향으로 10배수 원칙을 따른다. 1원 10원 100원 1000원 등 10의 배수로 커진다. 물론 10배수의 중간에 사용 편의를 위해 5원 50원 500원 5000원도 있다.

화폐 단위뿐 아니다. 미국은 길이 측정에 인치.피트.야드.마일 무게는 온스.파운드 등 영국식 단위(English measurement)를 사용한다. 미터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영국식 단위는 불편하고 혼동스럽다. 상급과 하급 단위간 규칙성이 거의 없다. 미터법의 경우 1센티미터의 100배가 1미터 1미터의 1000배가 1킬로미터다. 반면 영국식 단위는 인치의 12배가 피트 피트의 3배가 야드 야드의 1760배가 1마일이다. 10배수 규칙을 보이는 미터법과 비교하면 복잡하고 비합리적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국제표준단위로 미터법만 통용되고 있다.

CNN방송은 지난 12일 미국에서 미터법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터법 논쟁의 발단은 링컨 채피 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 경선 참가를 공식 발표하면서 미터법 사용을 주장했다. 그는 "선진국 중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며 "이제라도 다른 국가들과 같은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에서 영국식 단위를 아직도 사용하는 나라는 미국 리베리아 미얀마 3국이다. 이 단위를 처음 도입했던 영국조차도 공식적으로 미터법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미터법 사용 움직임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세기 중반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미터법 사용을 공식화했다. 1927년에는 부결되기는 했지만 수십만 명의 서명으로 의회에 미터법 청원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통상.교역에 있어 미터법은 가장 적합한 단위"라며 찬성 입장을 보였다.

미터법 주장이 끝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전세계적으로 미국만 사용한다는 것외에 과학적 단위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화성을 향하던 기후 탐사위성이 화성 대기권을 통과하다가 불에 탄 사고도 미터법과 영국식 단위의 차이로 발생했다. 록히드 마틴이 영국식 단위(lb.s)를 적용해 개발한 프로그램을 우주항공국이 국제표준단위(N.s)로 전환하지 않고 사용해 궤도진입 오류로 탐사위성이 불타 버렸다. 1억2500만달러가 소요된 프로젝트가 어처구니없는 단위 착오로 실패한 것이다.

150여년 사용한 단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단위는 의식주 생활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옷의 치수는 인치 음식 무게는 파운드 주택면적은 스퀘어피트가 익숙하다. 영국식 단위로 표기된 간판을 미터법으로 고치는 것에만 3억달러 이상이 소요된다는 추산도 있다. 여기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생활의 불편과 산업분야의 피해까지 감수해야 한다.

도량형의 목적은 '통일'이다. 일률적으로 통용되는 단위는 필요하다. 중국 진시황제의 여러 악정에도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도량형의 통일이다. 미국이 국제표준단위를 사용하지 않지만 이미 체화(體化)된 국민들에게는 전혀 불편이 없다. 통일성의 목적도 충족시킨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미국만 야드와 파운드를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욱이 지구촌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국가로서 독단이고 자만일 수 있다. 관습을 단기간에 바꾸기는 힘들지만 배려는 필요하다.

링컨 채피 전 주지사는 "미국이 미터법을 사용함으로써 '세계의 나머지 국가'에 합류해야 한다"며 "이는 미국이 세계에 보여주는 선의(Goodwill)"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잣대'로 세계를 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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