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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그인] 온라인 '영자'씨의 비애

[LA중앙일보] 발행 2015/08/21 미주판 11면 기사입력 2015/08/20 18:37

최주미 / 조인스아메리카 차장·J블로그 운영자

"가면을 쓰니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신났어요."

재기발랄한 복면을 쓰고 익명으로 노래하여 승부를 가르는 TV쇼에서 한 출연자가 그랬다. 그는 유명세의 제약과 선입견의 부담 없이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기쁨을 말한 것이지만, 그 시간 모니터 속에서 삿대질에 한창인 유저들의 댓글 세례로 어질어질하던 삐딱한 '운영자'의 귀에는 마치 온라인의 가면을 쓰고 섣부른 자유를 훔치는 악동들의 승전보처럼만 들렸다. 속이 쓰렸다.

온라인의 익명성을 악용하는 악플러의 문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수많은 비난과 상처와 고소와 자성의 굽잇길을 다 지나 이제는 인간 본성의 선악을 따질 계제도 없이 타고난 운명이요 나약한 태생적 헛발질쯤으로 사회적 달관을 이뤄낸 이미 올드 뉴스다.

아이디와 닉네임의 새 명찰을 달고 현실의 내가 아닌 '되어보고 싶은 누군가'로 변신하고픈 마음쯤이야 애교 넘치는 감성적 앙탈이다. 그래서 서툴지만 블로그를 열고 클럽의 모임에 가입하고 게시판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인격으로 살아보며 현실의 나를 자극하는 셀프 이벤트로 즐긴다면 최고다.

다 좋다. 다 좋고 아름답고 멋진 일인데, 그렇게 북적이는 사용자들 뒤편에 성은 '운'이요 이름은 '영자'라는 어떤 멀쩡한 '오프라인 인격'이 온라인 인격들과 고군분투 좌충우돌하는 엄연한 현실이 있고 그것이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사이좋게 교류하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근사한 사진을 공개하고 가슴치는 통렬한 글로 지적 만족을 선사하는 유저들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들을 북돋우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드러내고 고품질의 완성물을 편리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의무뿐이라면 천국의 문지기가 부럽지 않겠다.

하지만 영자씨의 일상 대부분은 다툼과 분란의 흙먼지 한복판에서 소모된다. 대놓고 하라면 스스로도 얼굴을 붉힐 무자비한 욕설과 조롱과 때로는 상상 초월 유치찬란한 인신 공격이 거침없다. 현란한 문자들을 대하노라면 주먹 대신 손가락에 불꽃 튀는 접전의 환상이 요란하게 펼쳐진다.

온라인 세상에도 법과 질서가 있으니 싸운 사람들 떼어놓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는 다짐도 받아둬야 한다. 자꾸 싸우는 이들은 출입 금지 시키고 남은 사람들 조심해달라고 방도 붙인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운영의 묘'를 찾고야 말겠노라 보물찾기 하듯 씨름하는 중에도, 사용자들은 원칙을 적용하려들면 전후 사정을 몰라준다 항의하고 내용을 살펴 판단하겠다면 주관적인 잣대라고 채근한다. 괴롭고 서럽다, 억울하다. 그런 순간의 영자씨는 사용자들에게 그토록 신뢰를 주지 못했었나 하는 자책으로 시무룩 꺼져가는 쓰린 가슴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온라인 인격'일 뿐이다. 아무리 실체를 설득하고 반성을 다짐 받아도 다시 가면을 쓰고 온라인에 접속하면 어떤 인격으로 등장할지 장담이 안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욕쟁이로 소문난 그 분이 출석하는 동호회에서는 모범적인 봉사자였다는 소문쯤은 흔한 얘기다.

소셜 미디어가 메모장이라면 블로그는 일기장이다. 클럽 게시판은 미지의 상대를 향한 프러포즈며 댓글 박스는 자기 존재의 증명서다. 온라인의 행적은 오롯이 내면의 이력서이자 감성의 명함으로 수천만의 인격들에게 전달된다. 얼마나 멋진 기적인가. 기적만 누리시라. 영자씨의 간절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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