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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안녕, 나의 멋진 기사!!

정 명 숙 / 시인

결국 나는 그녀를 떠나보냈다. 지난 14년 동안 나의 듬직한 보디가드였던 그녀 내 몸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지켜주고 자신은 만신창이 되어 뇌사로 판정받았다. 유일한 보호자인 나는 울음을 삼키며 장기기증에 서명했다. 비록 나를 떠나 멀리 가지만 그녀의 장기는 이식되어 누군가에게 절실한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뭉클한 것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우리 집에 입양된 동기는 오십의 반란이었다. 내 나이 스물다섯 때 힘찬 꿈을 안고 뉴욕에 왔다. 대학을 막 마치고 결혼한 다음 빈주먹에 젊은 패기만 쥐고 위풍당당하게 가족 친지 하나 없는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그 당시 비행기 표 두 장도 일 년 상환 월부로 구입했었다.

돈 한 푼 없었건만 그 당당함은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언젠가 아들 녀석이 20대 중반에 접어들자 "아빠 엄마 참 대단하다. 언어 다르고 생활환경이 전혀 다른 미국에 내 나이 때 어떻게 미국에 이민 올 생각을 했는지 마치 내가 다른 행성(another planet)으로 이민 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하며 경외심을 보였다.

나의 이민생활은 그래도 순탄한 셈이었다. 난 간호사로 남편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힘든 육체노동은 아니었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영어와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비즈니스로 큰돈을 벌지 않는 한 우리 부부의 봉급으로는 좋은 차 좋은 집은 꿈도 못 꾸었으며 날마다 올라가는 사립대학 등록금은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절약 절약은 우리의 구호였으며 등록금 모으기는 우리 삶의 절체절명의 목표였다. 우리는 좀 힘들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옥한 토지가 되어 주고 싶었다. 우리는 검소했으며 사치는 금기였다. 근면 절약정신이 우리 몸에 뱄고 앞만 보고 달렸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고 대학을 무사히 마쳤다.



그 후 내 나이 오십! 반란이 시작되었다. 빈둥지증후군과 갱년기 우울증은 나를 초라하고 처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엇인가. 그동안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남들 다하는 애들 키운 것 말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동안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좋은 차에 좋은 집에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녔다. 속이 텅 빈 사람들이 겉치레에 신경 쓰고 남의 눈을 의식한다며 당당했던 나 자신이었다.

2002년 5월 어느 일요일 오후. 같이 근무를 마친 젊은 흑인 동료와 함께 병원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우리는 바로 옆에 나란히 차를 세워 두었다. 그녀의 렉서스 RX 300이 은빛 광채를 나에게 사정없이 쏟아 부으며 사라졌다. 난 잠시 눈이 부셔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내 차를 돌아보니 나는 늙고 낡은 내 차보다 더 작아졌다.

그날 밤 결심했다. 남편에게 "나 말리지 마. 이렇게 안 하면 나 돌아버릴 거야"하며 엄포를 놓았다. 그 다음 날로 차를 구입했고 이틀 후에 똑같은 차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나는 행복했다. 물질은 물질일 뿐이고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라 믿고 도인처럼 초인처럼 살아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나 자신이 이렇게 속물이었나 한심했지만 난 분명히 행복했고 우울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녀는 나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 주었고 그녀의 격에 맞추어 살기 위해 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녀는 나를 찾기 위한 방랑의 여행에 동행해 주었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같이 이사를 왔으며 무엇보다도 내 생의 활력소가 되어준 요가에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거기서 솟아난 기운으로 어렸을 적 못 이룬 꿈 동양화와 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나를 보필했으며 욕심 많은 나를 실망시키지도 않았다. 항상 스피드광인 나를 고발하지도 않고 아무리 혹사시켜도 항상 환한 미소로 맞아주던 그녀 이번에도 아차 실수에 전봇대를 들이받았어도 제 몸 으스러져 나를 구한 너! 너는 정녕 나의 멋진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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