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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깨달음은 최종목적이 아니다

[LA중앙일보] 발행 2015/09/08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5/09/04 16:54

박재욱 법사·나란다 불교센터

"도대체 얼마를 더 틀고 앉아서야 깨달음의 뒤꿈치나마 볼 수 있단 말입니까?"

어느 날 가부좌를 틀고 있던 수좌가 느닷없이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헌데, 화들짝 놀란 스승은 한참이나 뜸을 드리다가, 다시 억 장 무너지는 한 말씀을 입에 문 말로 나직이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야 깨달을 때까지지…"

도대체 그 깨달음이란 과연 어떤 물건인가. 깨달음이란 우리가 그동안 세뇌되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고도의 관념적 사유와 고난도의 수행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고답적이고 초월적 신비함으로, 이미 화석화되고 박제된 그런 물건은 더욱 아니다.

깨달음은 '깨침'과 '달음질'로 나눌 수 있다. 깨침은 지혜의 획득을 뜻한다. 지혜란 정신작용을 포함한 모든 현상의 근원적 질서인 존재원리의 통찰로 미혹을 절멸하는 힘이다.

그 원리는 연기법이다. 연기법은 인(因)의 씨줄과 연(緣)의 날줄의 교집합으로 생멸하는 이치, 즉 '이것이 있어(없으면) 저것이 있는(없는)' 모든 현상의 상호 의존성을 뜻하며, 또한 인연들로 비롯된 현상들은 실체가 없기에 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는 무상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붓다께서 2600여 년 전 이미 깨친 진리로써, 새삼 각별한 수고로움 없이도 알 수 있는 기별이다. 따라서 깨침은 수행의 예비단계이며 종교적 회심의 단계로 불교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달음질'은 그 깨침을 토대로 지혜의 완성이라 할, 모든 번뇌마(魔)가 멸진된 완전한 자유, 절대 평온의 경지로 불교 최고의 위상인 열반의 성취를 위해, 그 깨침을 체화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담금질에 사무치는 일이다. 더불어 깨침과 동시에 발현되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공감 적 이해를 바탕으로, 모두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자비 행을, 열반성취 여부와 무관하게 실행하는 간단없는 무한여정을 일컫는 말이다.

요컨대 깨달음이란 '그것을(지혜) 알고 그것을 사는(수행과 자비실천) 것'으로, 불교의 최종목적이 아니라 열반의 수단이며 매뉴얼이다. 불교의 궁극은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이다.

지난달 28일은 3개월간 선승들이 참선에 매진했던 하안거 해제 날이었다. 그날 설악산 백담사의 해제법문에서 근세 불세출의 선승이며 시인인 조오현 스님은 뜻밖에도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다. 천 년 전의 화두에 평생 목맬 게 아니라, 중생의 고통과 시대의 아픔을 화두 삼는 산 불교를 살라"고 일갈, 만연한 '깨달음 지상주의'에 날선 죽비를 내려친 바 있다.

혁명적 발상의 전환이다. 그럼에도, 어쩌랴 오늘도 오매불망, 그 깨달음 찾아 삼만 리다.

"마을사람들은 해 떠오르는 쪽으로/ 중들은 해지는 쪽으로/ 죽자 사자 걸어만 간다/ 한걸음/ 안 되는 한뉘/ 가도 가도 제자리/ 걸음인데"(조오현스님의 시 '제자리걸음')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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