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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헤밍웨이 바다와 달콤한 자본주의

정구현/사회부 차장

'노인의 바다'에 다녀왔다. 헤밍웨이가 13년간 살았던 코히마르(Cojimar)어촌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실제 무대이고, 노인 산티아고의 모델인 늙은 어부들과 어울렸던 곳이다.

쿠바 취재 둘째 날,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30분쯤 10여km를 달려 인구 1000명의 작은 어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2006년 독일월드컵 현지취재 때 '괴테 하우스'로 가면서 느낀 설렘이 코히마르로 향하는 길 위에서 재생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큼 '노인과 바다'도 어린 시절을 뒤흔들어 놓은 글이어서다.

마을 한가운데로 난 울퉁불퉁한 길을 막다른 곳까지 걸었다. 길 끝에서 노인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 해변에 헤밍웨이의 동상이 바다를 보고 서있다. "헤밍웨이가 죽은 뒤에 마을 어부들이 자기들 배의 닻을 녹여 만들었어요." 가이드 펠리페씨가 한번 더 설명했다.

"하루 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어부들이 밥벌이 도구를 기꺼이 내놓을 만큼 헤밍웨이와의 우정을 아꼈다는 뜻입니다."



동상 근처에 헤밍웨이가 생전에 즐겨찾은 레스토랑 '라 테라사'에서도 우정의 흔적은 남아있다. 매니저 알피잘씨는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헤밍웨이가 앉았던 테이블은 항상 비워둔다"고 했다. 작은 어촌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준 대가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다.

헤밍웨이를 사랑한 어부들처럼 쿠바인들은 대개 순수했다. '북한의 형제국'이라는 사회주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음악과 춤, 럼주를 하나로 즐길 줄 아는 정열적인 사람들이었고, 이상과 현실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지성인들이었다. 민박집 여주인이 챙겨주는 아침밥은 우리네 어머니의 집 밥처럼 살가웠다. 하루빨리 이 나라가 완전 개방돼 멋진 쿠바 국민이 잘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쿠바의 열린 문이 불편해졌다. 마지막 날엔 '개방되면 안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외국의 돈들은 쿠바를 여기저기서 상처 내고 있었다.

쿠바의 교육제도는 대학원까지 전액 무상이지만 젊은이들은 학교를 등지고 있다. 평균 월급 40달러인 '의사'보다 하루 30~40달러 팁을 버는 호텔 벨보이나 식당 웨이터가 낫다고 했다. 식당마다 라이브 밴드들의 연주가 여전히 훌륭했지만, 젊은 연주자를 찾긴 어려웠다. 일흔 두살의 색소폰 연주자는 "요즘 아이들은 제대로 된 음악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반면, 새벽 1시가 돼서야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는 클럽에는 '노는'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다. 여성 중 60~70%가 성매매 아가씨다. 손님 1명에게서 80달러를 받는다. 쿠바 국민 월평균 수입 20달러의 4배다. 불법인데도 경찰은 뇌물을 받고 단속하지 않기 때문에 '아가씨'들은 더 많아지고 있단다.

환갑을 앞둔 가이드 펠리페씨는 "우리가 젊었을 때였던 혁명 시기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인생철학을 돈에 팔진 않았다"고 개탄했다. 물론 아직까지 일부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쿠바의 청춘들은 아직 건강하다. 말레콘 해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대학생 호세(25)는 3시간 동안 고등어 5마리를 잡고 선 "가족과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면서 이를 드러내고 환히 웃었다.

쿠바에서 돌아와 10편의 기사를 썼다. 글이 길어진 이유는 호세의 웃음처럼 아직은 때묻지 않은 쿠바의 순수함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지난 1일은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라이프 매거진에 발표한 지 꼭 6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노인 산티아고의 혼잣말이 새롭다. "희망을 버리다니 어리석은 짓이지. 아니, 그것은 죄야."

자본주의의 달콤함 때문에 쿠바의 희망이 꺾일까 두렵다. 제발 노인의 바다가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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