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칼럼20/20] 다시 부르는 아리랑

김완신 편집위원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은 대하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소설이지만 80년대 후반까지 국문학 연구에서 제외됐었다.

지금은 책으로 출간됐지만 그때까지 이 소설을 읽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당시에 그 소설을 보려면 1930년대 신문에 연재된 것을 복사해 숨어서 읽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불온서적(?)이 된 것은 민중봉기를 소재로 한 내용도 문제가 됐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경력 때문이다. 벽초는 1948년부터 북한에 머물며 김일성 내각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인물이다. 1919년 3.1운동 때 충북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했지만 북한 고위 정치인이었다는 이유로 항일투쟁사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작품도 빛을 보지 못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도 마찬가지다. 감각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서정시의 거봉에 섰지만 그도 1950년 납북되면서 1987년까지 그의 작품은 남한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지용이 남한에서 활동했고 정당한 평가와 연구가 이뤄졌다면 아마도 소월에게 주어진 '민족시인'의 영예는 그에게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역사가 숨겨왔던 이들의 문학은 해방 반세기가 지나서야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15일은 해방 60주년이다. 올해 광복절을 맞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에 대한 서훈이 추서됐다. 추서된 47명 중에는 격동의 시절에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던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이 포함돼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민족해방운동'을 결성해 항일운동을 한 김산은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였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연안파라는 이유로 그의 생애는 남북의 역사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는 북한 공산당에 한번도 관여한 적이 없었고 국제 사회주의 연대가 한국의 독립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일념으로 중국에서 공산당 활동과 항일투쟁을 했다.

그의 생애는 신문기자이며 계보학자였던 님 웨일즈가 1941년 뉴욕에서 발표한 소설 '아리랑(Song of Ariran)'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님 웨일즈는 중국혁명사의 고전으로 알려진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인 에드가 스노의 부인이다. 님 웨일즈는 격변하는 아시아에 머물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한 많은 집필을 남겼다.

님 웨일즈는 김산이 32세였을 때 그를 만나 3개월간 22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짧은 생을 살았던 한 조선인 청년혁명가의 일대기를 기록했다. 이는 김산이라는 개인의 일대기이면서 한국 근대사의 비극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계열이었고 좌파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60년의 한국 역사가 철저히 외면했던 독립유공자들의 서훈이 추서돼 역사에 자리매김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히 일이다. 이는 편협한 역사를 벗어나 아픔의 시간들을 딛고 한국 역사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과거의 죄를 단죄하거나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에 우선돼야 한다. 과거에 죄를 지은 자를 벌하기에 앞서 파란의 소용돌이에 묻혔던 이들의 업적을 역사는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바람과도 같았던 20~30년대 사회주의의 열풍 속에서 역경의 삶을 살았던 이들을 정권 차원이 아닌 민족의 이름으로 역사의 양지에 세우는 작업은 계속돼야만 한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