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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난민들이 일으킨 나라

이종호/논설위원

자기가 나고 자라고 살던 곳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사람은 인류 문명 시작부터 있었다. 망국, 전쟁, 내전, 정치적 탄압, 종교적 박해 등 이유도 다양했다. 역사는 그들을 유민이라 기록했고 지금은 난민이라 부른다.

유민(遺民)은 망국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고대에 나라가 망하면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최하층 계급으로 편입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니 새 삶터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말갈족과 연합해 발해를 세운 고구려 유민, 거란에 멸망당한 후 남으로 내려와 고려 백성이 된 발해 유민이 대표적이다.

나라가 온전해도 고향을 등지고 유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 후기 탐관오리의 수탈이 극심해지고 흉년과 기근이 계속되자 간도로, 연해주로 넘어간 유민이 급증했다'고 할 때의 그 유민이다. 이 때는 흐를 류자, 유민(流民)이라 쓴다.

일본 역사에도 한반도 유민이 등장한다. 도래인(渡來人)이 그것이다. 글자 그대로 물길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사학자들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의 집단 이주는 크게 두 시기에 집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기원전 3세기부터 AD 3세기에 이르는 시기다. 구체적으로는 한나라에 의해 고조선이 멸망(BC108년) 당한 전후다. 이 때 많은 유민들이 바다 건너 일본까지 갔다. 벼농사와 청동기로 특징 지워지는 야요이(彌生)문화의 주역은 바로 그 도래인이었다.



두 번째는 4~7세기 무렵이다. 가야가 멸망하고 고구려 신라 백제가 치열하게 싸우던 시기다. 먹느냐 먹히느냐 생존을 건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유민들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많은 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특히 가야, 백제 유민의 이주는 민족 대이동을 방불케 했다. 그들이 가져간 선진 문물과 기술은 지금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카(飛鳥)문화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도래인이 처음부터 문화와 기술을 전하기 위해 우아하게 바다를 건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란을 피해, 생명의 위협을 피해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넜다. 온전한 배가 있을 리 없었다. 먹을 것, 입을 것 또한 얼마나 엉성했을까. 지금 목숨 걸고 지중해를 건너고 있는 아프리카.시리아 난민들이 곧 1500년 전 동해 바다를 건너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역사를 읽는 것은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들의 처지가 되어 함께 웃고 울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잘한 것은 배우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과오는 교훈으로 새긴다. 하지만 요즘 난민 뉴스를 보면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회의가 든다. 비극적 종말이 뻔히 보이는데도 헛된 야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독재자들이 우선 그렇다. 거기다 어떻게든 난민 유입을 막아보려는 극우 민족주의, 극단적 보수주의를 보면서 과연 인류에게 양심과 자비라는 게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어떤 사회든 낯선 집단의 등장은 당장 귀찮고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일본의 도래인이 그랬듯이 장기적으로는 그 사회를 다양하게 만들고 더 나은 문화도 발전시킨다. 어떻게 보면 미국도 난민들이 만든 나라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 청교도, 기근과 배고픔을 피해 넘어온 아일랜드 사람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유럽인, 중국인, 중남미 사람들이 눈물과 땀으로 일궈낸 나라가 지금의 미국이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시리아 난민으로 세계가 고민하고 있다. 미국은 고작'1만명 수용'이라는 카드로 국제적 압력을 비켜가고자 하지만 왠지 미국답지 않아 보인다. 나라 안팎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저간의 이민정책이나 지금의 난민정책이 한 발 먼저 들어온 사람들의 텃세에 자꾸 휘둘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현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다. 우리 모두 자칫 잘못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잠재적 난민이라는 말이다. 시리아 난민이든 탈북 난민이든 남의 일로만 치부해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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