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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남을 돕는 것이 최고의 수행

[LA중앙일보] 발행 2015/09/22 미주판 28면 기사입력 2015/09/21 18:57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보시(자시심으로 재산이나 불법을 베풂)'는 불교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강조하는 원불교에서도 정신, 육신, 물질로 이웃과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일은 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베풀어야 할까. 우선 스스로가 행복해진다. 어려운 이를 도울 때 화가 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내가 이만큼 베풀었다'는 관념과 상(相)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단순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나 때로는 시혜자로서의 우월감을 즐기는 향락적인 동기가 어느 정도 섞여있다 할지라도, 베풀지 않는 것보다 나쁠 까닭이 없다.

둘째, 복(福)을 받게 된다.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인과의 원리이다. 수도인이 구하고자 하는 바는 지혜와 더불어 복이다. 주변을 보면, 복은 있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도 있지만, 지혜는 있지만 복이 부족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인과에 따르면 짓지 않는 복을 받을 수는 없다. 신년이 되면, 불교인들은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복 많이 지으세요."하는 인사를 더 많이 주고받는다.

셋째, 지혜를 얻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완벽한 성품(불성)을 갖고 있지만, 무명과 욕심, 집착 등에 가려 어리석은 것이다. 대종사께서 물었다. "저 등잔불이 그 광명은 사면을 다 밝히는데 어찌하여 제 밑은 저 같이 어두운고?" 제자 답하기를, "저 등불은 불빛이 위로 발하여 먼 곳을 밝히고 등대는 가까운데 있어서 아래를 어둡게 하오니, 이것을 비유하오면 혹 사람이 남의 허물은 잘 아나 저의 그름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나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사람이 남의 일을 볼 때에는 아무것도 거리낌이 없으므로 그 장단과 고저를 바로 비춰 볼 수 있사오나, 제가 저를 볼 때에는 항상 나라는 상(相)이 가운데 있어서 그 그림자가 지혜 광명을 덮으므로 그 시비를 제대로 알지 못하나이다."

지혜를 가리는 구름 중 가장 걷어내기 어려운 것이 '자신'에 대한 집착, 즉 아상(我相)이다. 자신의 이해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일일수록 바로 보기가 쉽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성자들이 '나'를 놓기 위해 강조한 것이 명상과 더불어 이웃과 세상에 대한 베풂이었다.

외람되지만 정기적으로 몇 군데 교육기관에 약간의 장학금을 내고 있고, 과외의 수입이라도 생기게 되면 공중을 위해 기부를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복을 짓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주되 목적은 지혜이다. 나에 대한 집착이 적을수록 온전하게 보고 듣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웃과 세상에 대한 베풂은 나에 대한 집착을 놓으며 명상보다 훨씬 쉬운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원불교에서는 경전을 '이해'하라고 하지 않고, '연습'하라고 가르친다. 연습 없이는 어떠한 성현의 말씀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남을 돕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부터 연습해보자.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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