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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우리 시대의 사문난적

이종호/논설위원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였다. 모든 유교 경전은 철저히 송나라 주자(朱子, 1130~1200)의 해석에 따라야 했다. 그럼에도 이단아는 있었다. 숙종 때의 대학자 윤휴(1617~1680)도 그 중 하나였다.

윤휴는 학문이 출중했음에도 한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 임금이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이나 머리를 조아린 병자호란의 굴욕을 전해 듣고 더 이상 과거에 응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 선비들이 주자만 따르는 것이 못마땅했다. 기존 성리학과는 다른 시각으로 유교 경전을 해석했다. 하지만 그의 반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윤휴와 학문적, 정치적 라이벌이자 당시 최대 권력였던 노론(老論)의 영수 송시열(1607~1689)이 그를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사문난적(斯文亂賊). 삿된 학문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이다. 조선 선비들에게 이보다 무서운 말은 없었다. "주자가 모든 학문의 이치를 이미 밝혀놓았는데 감히 자기 의견을 내세우다니"라는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끝이었다. 학문도, 벼슬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했다. 윤휴 역시 그 올무에 걸려들었고 끝내 사약까지 받았다.

이런 분위기의 조선에서 새로운 사상, 창조적인 생각은 제대로 싹틀 수가 없었다. 그게 몇 백년 이어져 왔다. 서구의 새로운 문물 앞에서도 주자학만 붙들고 빗장을 걸어 잠갔다. 조선이 근대화의 때를 놓치고 끝내 멸망의 길로 내닫고 말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한국에선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國定)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맞춰 학계, 교육계, 일반 사회 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뜨겁다. 현재의 역사교과서는 민간에서 만들고 국가는 심의·승인만 해주는 검정(檢定) 시스템이다. 이것을 오는 2018년부터 국가가 직접 발행하는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정부 여당의 '저의'는 한마디로 국론 통일이다. "역사 교과서에 대한 오류·편향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국민 통합과 균형 잡힌 역사 인식 확립을 위해 한국사 교과서를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이 나라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감히 다른 의견을 내세우다니"라는 보수 우익의 겁박((劫迫)이 담겨있다.

언뜻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하나의 교과서'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안 그래도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획일화'다.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고 똑같이 행동해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거기에 이제 역사까지?

유사 이래 사상 통제로 성공한 나라는 없다. 진시황도, 히틀러도, 일본의 군국주의도 한 두 세대를 못 넘겼다. 초기 문화강국 조선이 일본에 추월당한 것도 오직 주자학 하나만 진리인 줄 알고 붙들고 있었던 탓이 크다.

일사불란을 최고 미덕으로 여기고 분열의 싹은 병적으로 싫어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정치권력, 종교권력, 자본권력 예외는 없다.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로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행동만 하기를 바란다. 그 이면에 공동체의 안위보다 자신이 속한 파당의 이익과 개인의 영달만 있다는 것도 못된 권력의 공통된 속성이다.

지금 세계의 화두는 다양성과 개방성이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바뀌고 있는 한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도 이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의 역사'로 국민의 생각을 통일해 보겠다? 안될 말이다.

다양성, 개방성이 발붙이지 못하는 사회에 창조경제, 창조문화는 헛된 구호일 뿐이다. 몽매한 자들이여, 역사를 말하면서 어리석은 역사는 왜 또 되풀이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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