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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헌혈과 개스

김완신 편집위원

인간의 혈액과 자동차의 개스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피와 개스를 연결시킬만한 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관계를 짓는다면 인체의 피는 양분을 전달해 사람을 활동하게 만들고 개스는 자동차에 주입됐을 때 차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사람이든 자동차든 무언가를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억지로 관계를 정할 수는 있다.

서로 관련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피와 혈액이 만나 이색적인(?) 캠페인이 열렸다. 이색적이라기 보다는 희한한 발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지난 9일과 10일 양일간 LA 북부 캐년 컨트리와 랭캐스터에서는 헌혈자들에게 개스를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다. 미국적십자사와 홀리크로스 병원이 후원하고 셸 주유소가 주관한 이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헌혈을 할 경우 간단한 기념품을 주는 행사는 많았지만 개스를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도저히 연결지을 수 없는 '피'와 '개스'가 만나 이런 행사를 만들었다.

현재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카트리나 재해복구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고유가를 진정시키는 일이다.

카트리나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혈액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카트리나 재난 이전에도 피는 모자랐었다. 날이 갈수록 헌혈자가 줄어 미국 전체의 혈액 보유량이 항상 부족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상 최대 재난 중의 하나인 허리케인은 혈액을 정적량 유지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고유가도 문제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25% 정도를 소비하는 미국으로선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원유 소비량이 많다보니 국제유가의 상승은 즉각적으로 일반 주민들의 가계에 주름살을 만든다.

이같은 상황에서 피와 개스의 물물교환(?)은 기발한 이벤트로 생각할 수도 있다. 부족한 혈액을 확보할 수 있고 동시에 값비싼 개스비로 고민하는 주민들에게 비록 한번이지만 개스비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피를 개스와 맞바꾼다는 것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개스는 돈이다. 헌혈이라는 아름다운 명목으로 하는 선행이지만 결국은 돈으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매혈과 별 차이가 없다. 피로 개스를 사는 것이다.

헌혈에 참가한 주민 중에 과연 몇명이 자신의 피가 수혈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상자 치료에 긴요하게 쓰여질 것이라는 순수한 생각으로 참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보유 혈액이 부족하지 않았다. 전쟁과 재난으로 부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자진해서 헌혈대에 오르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헌혈은 생명을 나누는 봉사와 희생에서 출발했고 이런 정신은 미국의 근간을 지탱해온 힘이었다.

개스라는 현실적인 보상이 있어야만 헌혈을 하는 세태 그리고 이같은 캠페인을 기획한 관계 당국을 보면 사그라져 가는 미국의 정신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정부 당국은 고유가를 진정시키고 미국을 이끌어온 나눔과 봉사의 숭고한 이념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생명과 사랑이 담긴 따스한 피를 차디찬 개스와 바꾸려는 사람들은 늘어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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