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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살아야 할 의무 vs 죽어야 할 권리

김완신/논설실장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발전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군 조직을 개편하고 조세제도와 교통망을 정비해 제국 확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사후 로마인들에게 신으로 추앙 받았지만 그도 병의 고통은 두려웠던 것 같다.

로마의 영웅 12명의 전기를 기록한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의 책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고백이 나온다. "나는 아내 리비아의 팔에 안겨 '빨리' 그리고 '고통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아름다운 죽음을 원한다." 황제가 원했던 아름다운 죽음은 그후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의 어원이 됐다. 안락사는 17세기 들어 의학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근래에는 '편안한 죽음'에 중점을 두는 안락사를 대신해 환자에게 '죽음 결정권'을 부여하는 존엄사라는 용어가 나왔다.

지난 5일 캘리포니아주가 존엄사법(End of Life Act)을 확정했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서명함으로써 내년 1월 또는 늦어도 11월 안에 발효가 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들에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이다. 최소 2명의 의사로부터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이 6개월 이하라는 판정이 필요하고, 환자는 약물 복용을 스스로 결정할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전에 세 차례 존엄사법 제정이 무산된 가주에서 주지사 서명은 쉽지 않아 보였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브라운 주지사는 일반적인 법안과 달리 존엄사법은 생사를 결정하는 내용이어서 감정적인 부담과 갈등이 컸다고 고백한다. 그는 "내가 매우 고통스러운 병으로 연명하고 있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른다"며 "다만 법이 허용한 '선택'을 고려해 보는 것은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의 합류로 미국에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주는 5개로 늘었다. 오리건.워싱턴.버몬트는 이미 존엄사법을 통과시켰고 몬태나는 죽음 선택권을 인정하는 판례를 통해 사실상 존엄사를 허용했다.

존엄사법 시행방식은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캘리포니아주는 1997년 미국 최초로 법을 시행한 오리건주와 유사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의사가 치명적인 약물을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오리건주에서는 지금까지 1173명의 환자에게 약물을 처방했고 이중 752명이 이를 복용해 사망했다. 2014년에는 105명이 존엄사법으로 생명을 포기했다. 워싱턴주의 경우는 지난해 최소 176명이 약을 받아 이중 170명이 사망했다. 약을 처방받은 환자 일부는 약을 사용하지 않고 사망한 경우도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존엄사법이 시행되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자살보조반대협회 팀 로잘레스 회장은 "가주 역사와 제리 브라운 통치시대에 암흑기가 왔다"며 소송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존엄사 법안을 지지해 온 '연민과 선택(Compassion & Choices)' 그룹의 바버러 리 회장은 "가주의 존엄사법 실시는 오리건주 이후 가장 큰 승리"라며 "여러 주로 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20여 개 주에서 존엄사법 또는 유사한 법안이 심의되고 있다.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존엄사법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시행 주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갤럽이 지난 5월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존엄사법을 찬성하는 응답자는 2013~2015년 사이 51%에서 68%로 증가한 반면 반대의견은 45%에서 28%로 크게 줄었다. 또한 도덕적으로 용인 여부를 묻는 설문에도 '용인'은 45%에서 56%로 늘었고 '불가'는 49%에서 37%로 떨어졌다.

제국을 호령했던 황제도, 보통의 사람들도 병과 죽음 앞에서는 고통으로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면 죽어야 할 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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