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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미와 또바기 다솜을 꿈꾸며…

신랑·신부 첫날밤은 '꽃잠'
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은 '나비잠'
'너나들이'는 허물없는 사이
서로 겨우 아는 정도는 '풋낯'
우리말 아는 만큼 쓸 수 있어


셀피.몰링족.핵꿀잼 등…. 올해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334개의 신조어 중 일부입니다. 해마다 트렌드를 반영한 신조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럴수록 우리 순우리말들은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9일 한글날을 맞아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 아울러 외래어를 우리말로 예쁘게 다듬은 순화어들도 소개합니다.

홍상지 기자

"뭐라고 수군거려도 상주는 강울음을 울지 않았다"



'밤새도록 울다가 어느 초상이냐고 묻는다'는 속담이 있다. 초상집 분위기 때문에 밤새워 거짓 울음을 울었다는 이야기다. '강'은 접두어로 쓰일 때 '물기가 전혀 없는' '억지'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물기가 없는 울음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강울음은 '억지 울음', 곧 '거짓 울음'을 뜻한다. 비슷한 뜻으로 건성으로 우는 '건울음'이란 표현도 있다.

'강'은 접두어로 쓸 때 '호된' '그것만으로' 등의 뜻을 지니기도 한다. 그래서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를 '강추위',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을 '강술'이라고 한다.

"신랑이 너무 취해서 꽃잠도 제대로 못 잤대"

결혼한 신랑.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흔히 '첫날밤'이라고 한다. '꽃잠'은 바로 그 첫날밤의 옛말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처음으로 결실을 맺어 꽃을 피우는 그 순간을 '꽃잠'이라는 예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꽃'이 '처음'의 뜻으로 쓰인 말은 꽃잠 말고도 많다. '맨 처음'을 표현할 때는 '꽃등', 빚어 담근 술이 익었을 때 첫 번째로 떠내는 맑은 술은 '꽃국', 곰국이나 설렁탕을 끓일 때 고기를 삶아내고 아직 맹물을 타지 않은 진한 국물은 '꽃물'이라고 한다.

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나비도 '잠'과 붙어 예쁜 우리말이 된다.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을 '나비잠'이라고 부른다.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며 두 팔을 벌리고 자는 아이의 모습이 흡사 한 마리의 나비 모습 같다는 데서 따왔다.

"이번에 온 비도 겨우 먼지잼하고 말았지, 뭐"

요즘 전국이 가뭄 비상에 걸렸다. 지난주에 잠시 가을비가 찾아왔지만 가뭄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처럼 메마른 땅에 먼지를 겨우 재워놓을 정도로 내리는 비를 '먼지잼'이라고 한다. 가뭄으로 애타는 농민들의 마음이 녹아 있는 말이다. 먼지잼의 '잼'은 '재우다'의 줄임말이다.

먼지잼 외에도 비를 표현하는 다양한 순우리말이 있다. 먼지잼과 반대로 모낼 무렵 한목 제대로 오는 비를 '목비'라고 한다. 농민들에게 가뭄철 제대로 된 단비가 돼주는 비다.

이 밖에도 여름에 내리는 비는 '잠비', 가을에 내리는 비는 '떡비'라고 부른다. 한창 농사철인 여름에는 비를 핑계로 늘어지게 자고, 수확철인 가을에는 비가 내리면 내친김에 떡을 해 먹는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곰비임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곰비임비'는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연달아 계속 일어난다는 뜻을 담은 우리말이다. 예로부터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인 말이다. 우리말 연구가 박남일 선생이 쓴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 따르면 곰비임비는 정확한 어원이 밝혀진 말이 아니다. 다만 그 말의 느낌이 단순하고 예뻐서 백성들의 입에 익숙하게 오르내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곰비임비는 상호로도 인기가 많다. 일이나 손님이 끊이지 않고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상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연필이 또 어디로 갔지? 정말 김첨지감투네"

조선시대 중추부의 정3품 무관의 벼슬이던 '첨지(僉知)'. 그러나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첨지는 신분에 상관없이 나이 든 어르신에게 붙이는 흔한 호칭이 돼버렸다. 이 시기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부정부패가 심해져 수많은 '첨지'가 생겨난 것이다. '거품 관직'이 심해지면서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벼슬의 가치가 땅 밑으로까지 떨어진 상황. 정체 모를 김첨지가 어디 한둘일까. '김첨지감투'는 실제로 허울만 있지 내용은 없거나, 이름만 있고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어떤 사물이 도깨비 장난같이 없어지길 잘하거나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경우에도 사용된다.

"너나들이하는 사이일수록 서로 말조심하자고"

한 유행가 노래 가사에서 남자는 누나에게 '너라고 부를게'라고 선포한다. 이렇듯 누군가를 '너'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친밀한 사이라는 방증이다. 설령 아랫사람이라 할지라도 '너'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는 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너' '나' 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바로 '너나들이'다. 형식적인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툼한 친구 사이다. 반면에 서로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는 '풋낯'이라고 부른다.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풋'이 얼굴의 '낯'과 결합해 아직 무르익지 않은 인간관계를 표현했다. '풋낯'인 사람들이 또 시간이 지나면 '너나들이'하는 사이가 되는 게 사람 사이의 재미 아닐까.

"천 리 길품을 팔아 왔건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길품'은 도로와 관련된 우리말 중에서도 한국 문화가 직접 반영돼 있는 말이다. 원래 길품은 남이 갈 길을 대신 가 주고 삯을 받는 일을 가리킨다. 춘향의 편지를 갖고 한양의 이 도령을 찾아가던 방자가 바로 길품을 판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 보람도 없이 헛길만 가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길품을 들인다'고도 하는데, 이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일부러 노력을 들여 가는 경우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발품 팔다'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는 교통.통신이 발달한 요즈음에 생겨난 말이다.

길품을 팔다 보면 때로는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길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빙 둘러 가기도 한다. 이때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질러가는 길을 '지름길'이라고 한다면 빙 둘러 가는 길이나 우회로를 일컬어 '에움길'이라고 한다. 같은 말로 '두름길'이라고도 한다. 에움은 '둘레를 빙 둘러싸다'의 뜻인 동사 '에우다'에서 나왔다.

외국에서 온 단어도 다시 예쁘게 다듬어요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립국어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들어오는 외래어들을 우리말에 적합한 순화어로 고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매년 문인.언론인.학자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말다듬기 위원회도 꾸린다.

한 단어가 순화어로 뽑히는 과정은 꽤 까다롭다. 먼저 누리꾼들이 제보하거나 국립국어원에서 직접 발굴한 순화 대상어 중 순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말을 결정한다. 그리고 누리꾼과 말다듬기 위원들이 제안한 순화어 후보들을 검토한 뒤 최종 순화어를 확정한다. 국립국어원은 2013년부터 매월 3~5개의 순화어를 발표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다듬기' 누리집(홈페이지)에서 누구든 참여 가능하다.

하지만 순화어로 결정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국립국어원은 만들어진 지 1년 이상 된 순화어의 언론 활용 빈도가 8% 이상이면 의미 있는 결과라고 평가한다. 2012년 이후 77개의 순화어가 발표됐는데, 이 중 언론사의 활용 빈도가 8% 이상인 순화어는 34개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쓰인 순화어는 2012년 7월 발표된 '녹색소비자'다. 다음 세대의 환경을 생각해 친환경.유기농 제품 등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뜻하는데, 원래 녹색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가 합쳐져 '그린슈머'로 사용돼 왔다. 이 밖에도 '살얼음'(블랙 아이스), '옥상정원'(그린루프), '연결로'(램프), '맞대결'(매치업),'육아설계사'(베이비 플래너) 등의 순화어가 높은 활용 빈도를 보였다.

이미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외래어를 굳이 순화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음료수 컵인 '텀블러'의 순화어로 '통컵'이 선정됐는데 일부 누리꾼 사이에서는 '흥선대원군이냐' '통컵도 영어 아니냐' 등의 비난이 일었다. 국립국어원 김문오 연구관은 "쉬운 외래어나 우리말로 대체하기 어려운 외래어는 그냥 갖다가 쓸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조금 귀찮더라도 번역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통컵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다른 대안을 계속해 논의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외래어를 순화어로 고치는 작업은 나름의 원칙이 있다. 먼저 원래 단어 수의 1.5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 만든 단어가 본래 단어가 갖고 있던 뜻을 충분히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김 연구관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계 각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걸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100년 후 우리말이 사라질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며 "우리말로 사물과 현상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참고 및 도움말=국립국어원,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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