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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교황을 향한 개신교의 불편한 시선

[LA중앙일보] 발행 2015/10/13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10/12 16:13

장열/문화특집부기자·종교담당

기독교의 성경은 말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자유는 해방을 내포한다. 갇힌 공간에서 열린 세계로의 이동이다.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영혼의 뜨임이다. 진리는 인간을 그러한 자유로 안내한다. 그래서 진리는 광활하다. 유한을 넘어 무한을 깨치게 하고 암흑에서 빛으로 향하게 한다.

진리는 하나다. 성질상 두 개념의 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편협하고 협착하다. 자칫 독선으로 비친다. 진리를 다루는 종교는 그래서 무섭다. 저마다 난해한 진리를 두고 무형의 싸움을 벌인다. 그러한 대립과 갈등 구도가 오랜 시간 고착되다보면 진리를 통한 성숙보다는 종교성이 아집스럽게 똬리를 튼다. 이는 되레 인간을 가둔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비본질에 쓸데없이 신념을 낭비하게 만든다.

최근 가톨릭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행보가 남긴 의미는 사회 곳곳에 스몄다. 개신교는 그런 교황을 내심 불편해 했다. 시샘의 눈길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가톨릭에 대한 교리 비판부터 교황이 보인 모습에 대해 진정성을 따지는 목소리도 있었다.

들어보면 대개 개신교 교리를 바탕으로 한 진리에 대한 지적이다. "비진리가 내어놓는 선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합리적으로 보이고 세상의 인기를 얻는다고 거짓이 진리가 될 수 없다" "교황은 진리가 아닌 행위에만 초점을 둔 가짜" 등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주장은 개신교를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남의 것'을 비진리로 규정한다고, 필연적으로 '나의 것'이 진리로 정의될 수 있는가. 증명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진리는 반드시 반응을 수반한다. 반응은 진리 소유에 대한 증명이다. 이는 자연스레 영향력으로 전환된다. 성경에서는 그걸 '그리스도의 향기'라 하지 않나. 향기는 반응에서 비롯된다. 애써 발산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퍼지며 주변이 알아서 느낀다.

그런 면에서 개신교는 다른 것에 대한 비생산적 논쟁을 거두고 그동안 진리에 대해 스스로 반응하지 못했던 부분을 돌아보는 게 먼저인 듯 싶다.

타종교의 비진리가 문제라면, 진리를 소유했다는 개신교가 그 가치대로 살지 못하는 건 더 큰 문제다. 개신교는 진리 없는 타종교가 우려되는가. 진리에 기반하지 못한 선행이 그렇게 거슬리는가. 그보다 안타까운 건 진리를 소유했다면서 정작 진리 없는 부류보다 더 진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미 각종 논란과 곳곳에서 야기된 문제들이 어그러진 자화상을 그려내지 않았나. 아무리 교리가 다르고 신념이 달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개신교가 진리 없는 선행을 무의미하게 여긴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윤리나 도덕마저도 불필요한 것일까. 쇼맨십이든 아니든 교황은 종교를 떠나 인간이 보여야 할 지극히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진리 여부를 떠나 그 모습 정도는 수용할 여유가 개신교에도 있어야 한다. 진리가 주는 자유함은 드넓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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