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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권마다 역사책을 바꿀 것인가

[LA중앙일보] 발행 2015/10/15 미주판 11면 기사입력 2015/10/14 19:24

정찬열/시인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 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 시인의 시 '거대한 뿌리'의 부분이다.

시인은 마침내 진창과도 같은 더러운 역사를 긍정한다. 그것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냉혹한 진단이자 낙후된 현실을 넘어서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왜 뜬금없는 김수영 얘기인가. 요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현행 검인증제도를 왜 이 시점에서 국정화해야 하는가에 관한 비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후손에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반성과 교훈을 찾아 현실의 모순과 과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해결함으로써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데 있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 역사가 부끄러운가. 역사를 알수록 민망하고 괴로운가. 그럴 것이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가 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괴로운 역사의 진창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 위해서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몇 년 전, 전북 고창에 있는 서정주 문학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국화 옆에서'와 같은 잘 알려진 여러 편의 유명한 시와 함께, '마쓰이 히데오 오장 송가' 같은 당시 한국 청년들에게 일본군 지원을 독려했던 작품도, '전두환 대통령 탄신 58회 축시'도 걸려 있었다. 시인의 공과(功過)를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 평가하도록 숨기고 싶은 작품까지 함께 전시한 기념관측의 공정한 처사가 돋보였다.

우리는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른다고 일본을 비난한다. 역사를 통절히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그러면서 두 나라의 국격을 비교한다. 이 두 나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자명하다.

이 시점에서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한 23년 전,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견해를 참작할 필요가 있다. 헌재는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명시했다. 이어서 "국가가 교과서 발행을 독점하면 학생들이 획일화·정형화되고, 중앙 정부의 일방적 결정은 자유민주주의와 모순되고, 역행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국정화가 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사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일부의 의견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다시 김수영이다. 넘어졌다는 자각이 없으면, 일어서려는 마음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더러운 역사에서, 그리고 더러운 진창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진창과도 같은 땅에 거대한 뿌리를 박아 굳건히 서야한다. 그러기 위해, 역사를 정직하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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