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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의 황금 황제 만사 무사, 그보다 부자는 없었다

인류 최고 부자, 만사 무사
현재 가치로 환산 4000억 달러
세계 황금 70%, 소금 절반 장악

1324년. 이슬람의 성지 메카로 향하는 수많은 행렬 중 단연 눈에 띄는 한 무리가 있었다. 말리제국의 왕인 만사 무사(1280~1337)의 순례단이다. 페르시아 비단과 양단으로 지은 화려한 옷을 입은 6만 명의 수행원과 1만2000명의 노예가 뒤따르는 행렬이 이어졌다. 노예들은 2.7㎏의 금괴를 지고 걸었다. 낙타들은 136㎏의 사금과 금덩어리 보따리 100개를 나누어 짊어졌다. 행렬은 장관이었다.

무사가 죽은 뒤 제국은 몰락했다. 그의 순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4000㎞의 육로를 이동하며 1년 동안 그가 뿌린 엄청난 황금 때문이다. 무사는 매주 금요일 자신이 선택한 곳에 사원 건설 자금을 내줬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원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경의의 징표로 이집트에는 5만 디나르(현재 가치로 6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을 보냈다. 그의 '통 큰 기부'는 이후 10년 동안 금값 폭락을 야기할 정도였다. 이뿐 아니다. 무사는 고대 학문의 중심지로 떠오른 도시 '팀북투'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부자의 면모를 보였다(존 캠프너, 『권력 위의 권력 슈퍼리치』).

무사는 지중해 일대 시장의 황금 가격을 직접 통제한 유일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무사가 통치하던 말리(현재의 가나)는 14세기에 전 세계 황금의 70%를 생산했다. 원자재를 독점적으로 소유한 셈이다. 게다가 제국의 북쪽에는 암염 산지도 있었다. 전 세계 소금 공급의 절반을 담당했다. 금과 소금을 쥔 제국의 왕은 막대한 부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무사의 비호 아래 교통의 요충지인 말리는 교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무사의 재산은 더 늘어났다.

 무사는 시사주간지 '타임'과 '셀레브리티 넷워스'가 선정한 '인류 최고의 부자' 순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셀레브리티 넷워스에 따르면 무사의 자산은 오늘날 가치로 4000억 달러(약 455조원)로 추산된다. 물가상승률과 2013년 당시 금의 현재 시세(1온스당 1330달러)로 환산한 수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자산의 4.8배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게이츠의 자산은 829억 달러다. 루돌프 웨어 미시간대 역사학과 교수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막대한 만사 무사의 재산은 묘사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무사를 포함해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부호가 존재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부(富)를 비교해 일렬로 늘어 세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통화가치와 명목상 자산 금액, 상품의 구매력 등을 계량화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 곳에 올려놓고 비교할 저울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무모한 듯 여겨지는 시도는 이어졌다. 타임은 저명한 경제학자 및 역사학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경제적 영향력으로 따져 역사상 부호의 순위를 매겼다. 셀레브리티 넷워스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했다. 1913~2013년 물가상승률을 2199.6%라고 산정한 뒤 부호들의 현재 자산 가치를 계산했다.

 이렇게 따졌을 때 과거의 부는 신분과 직결됐다. 『권력 위의 권력 슈퍼리치』의 저자인 존 캠프너는 "여러 문화권에서 '부'의 개념은 오랜 세월 왕실과 결부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제국의 통치자들이 '인류 역사상 최고 부호의 순위'에 포진하는 이유다. 특히 당대의 경제적 영향력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타임'의 역사상 최고 부자 순위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로마제국 황제(기원전 63~14)와 북송의 6대 황제인 신종(神宗·1048~1085), 인도 무굴제국의 3대 황제인 악바르 1세(1542~1605)가 2·3·4위를 차지했다. 공통점은 이들이 통치한 제국이 당시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25~30%가량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황제 개인의 자산은 로마제국 경제 규모의 20%에 맞먹는다"고 주장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스탈린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50년 소련은 세계 GDP의 9.5%를 차지했다. 이는 2014년 기준으로 7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 조지 리버 앨라배마대 역사학과 교수는 "스탈린은 (자신이 보유한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호의 지형도도 변화하는 모습이다. 영국의 '정복왕 윌리엄'(윌리엄 1세)의 조카로 요크셔부터 런던에 이르는 25만 에이커(약 10억㎡)의 영지를 차지했던 앨런 루퍼스(1040~1093, 1787억 달러)나 미국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물려받았던 스티븐 밴 렌슬러(680억 달러)와 같은 '땅 부자'는 거부의 반열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출생으로 신분이 결정되는 시기를 벗어나 상인이나 전문가 집단이 부상하고 산업혁명 등을 거치며 '기업'이라는 새로운 제국의 통치자가 등장한 탓이다. 특히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이 새로운 갑부 탄생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면서 루돌프 힐퍼딩이 『금융자본론』에서 주장한 '창업자 이익'(산업 자본이 주식 자본으로 전환될 때 발생하는 이익)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US스틸'의 앤드루 카네기(1835~1919, 3100억 달러)와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존 D 록펠러(1839~1937, 3400억 달러), '자동차의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1863~1947, 1990억 달러), 철도와 증기 사업으로 자산을 일군 코닐리어스 밴더빌트(1794~1877년, 1850억 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부호를 줄 세우는 다른 잣대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불평등 연구에 정통한 학자인 브란코 밀라노빅이 『가진 자, 가지지 못한 자』에서 시도한 역사상 부호 평가법을 소개했다. 부호의 연간 소득으로 당대 평균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몇 명이나 고용할 수 있는지를 따져본 것이다. WP는 "통화가치는 시대를 거슬러 환산하기 어렵고 구매력 차이가 큰 만큼 역사에 걸쳐 개인의 재산과 부를 비교하려면 고용 능력으로 경제력을 가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역사상 최고의 부호는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이었다. 2009년 기준 슬림의 자산은 530억 달러였다. 여기에 연 6%의 금리를 적용해 나온 소득으로 한 해 44만 명을 고용할 수 있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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