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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엄지손가락 행복론

[LA중앙일보] 발행 2015/10/26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10/25 15:54

김석하/사회부장

손을 짝 펴고 책상에 올려놓자. 가지런히 쭉쭉 뻗은 네 손가락 옆에는 작고 두툼한 엄지손가락이 살짝 비틀려 홀로 있다. 네 손가락의 밑 단면은 모두 책상과 붙어있다. 한데 엄지손가락은 옆이 20~30도 정도 들려있다. 네 손가락이 책상에 착 달라붙은 상황에서, 엄지 손가락 밑면은 결코 책상에 붙을 수 없다.

살짝 들려 있는 엄지 손가락의 경사면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왜? 움켜쥐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움켜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쥔다는 말은 내 것을 챙긴다는 뜻이다. 만일 엄지손가락 옆이 살짝 들려 있지 않았다면 움켜쥐기가 힘들었을 것이다.-소유.

네 손가락을 말아 쥐고 살짝 비틀려 있는 엄지가 그 밑을 받쳐 주면 주먹이 된다. 손가락들은 다 연약하지만, 주먹은 무기(펀치)가 된다.-폭력.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과 합해져 소유와 폭력(힘)의 상징이 된다. 우리가 상대방을 치켜세울 때 엄지손가락을 치켜 드는(thumb up) 이유는, 소유와 폭력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네 손가락을 말아 쥐고 엄지손가락만 곧추 세우는 행동은 내 것으로 움켜쥐기를 포기했고, 내 손가락들을 주먹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작고 볼품없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세울 리 없다.

깡패류 영화에서 보면, 조직 내 배신자를 처벌할 때 손가락을 자르는 경우가 있다. 무슨 손가락이던가. 대부분 네 손가락에서 하나를 고른다. 나름 의리로 뭉쳤다는 깡패 조직에서 엄지손가락은 봐준다. 죄 지은 자의 목숨을 앗고 싶다면 목을 자르면 된다. 그러나 평생 무능력과 상실의 늪에서 헤매게 하고 싶다면 엄지손가락을 자르면 된다.

네 손가락은 모두 세 마디로 돼 있다. 엄지손가락은 두 마디다. 단순해 보이지만 해부학적으로 보면 손은 인체 기관 중 가장 많은 뼈로 구성돼 있고 안으로만 움직인다. 각 손가락의 역할과 기능, 움직임을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 첨단 로봇이라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미래에 터미네이터를 만드는 박사가 제일 먼저 만들었던 것은 터미네이터의 손이다. 손은 뇌의 다른 용어인 셈이다. 손가락은 욕망과 분노를 담은 표상이고, 외부환경과 가장 먼저 접촉하고 마음을 가장 미묘하게 실어낸다.

갓 태어난 아이의 토실토실한 손은 꽉 움켜쥔 채다. 귀여워서 하나하나 손가락을 들었다 놓으면 바로 다시 움켜쥔다. 때론 섬뜩하다. 인간은 움켜쥐는 본능으로 태어났고, 자라면서 더욱 많은 것을 쥐라고 직간접으로 강요당해 온다. 이것이 발현되는 시점은 주로 이맘 때다.

한 해가 두 달 정도 남으면 행복의 이미지들은 진열대에 널려 있고, 그걸 더 많이 움켜쥐어야 행복할 것 같다. 행복 조바심에 빠지는 것이다. 뇌의 조바심은 손가락의 본능을 타고 소유 강박감으로 치닫는다. 사실 빚이나 후회가 적다면, 솔직히 인생의 재미는 돈 쓰는 맛이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오늘 동료에게 점심 밥 한끼 샀는데 기분이 나쁜가. 생스기빙, 크리스마스 때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을 주고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밥 한끼.선물 등 물질이 아닌, 타자-동료, 가족, 지인 즉 남(사회)을 향한 지향점이다.

3주 후인 내달 14일 사랑의 바자 행사가 열린다. 작은 물품, 적은 돈이라도 쓰는 곳을 조금만 바꾸면 행복은 바로 온다는 철학이 그 자리에 있다. 나 홀로 행복할 순 없다. 행복은 손가락처럼 주변이 맞물려야 한다. 움켜쥐는 엄지손가락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펴서 추어올리는 엄지손가락은 인간 미(美)의 정수다.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가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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