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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사람과 어울릴 때 빛이 난다

[인물 오딧세이] 창업 반년 만에 'LA 베스트 커피숍' 부상… '파운드 커피' 애니 최 사장

꿈 꿔왔던 방송 편집자 생활 2년
단절된 삶에 회의 느껴 과감히 사표
행복한 일 찾아다니다 카페 떠올려
목표 생기자 커피숍 인턴부터 시작
일 하면서 고객들과 두터운 신뢰
창업비용 10만 달러도 그들이 투자
시시콜콜 수다 떨며 인생 상담도
그들을 함께 사는 재미에 푹 빠졌죠


에든버러의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가 떠오른 건 왜였을까.

'파운드 커피'(Found Coffee)를 찾은 그날의 날씨는 공교롭게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하늘처럼 낮게 깔려있었고 또 우연찮게도 카페 안 사람들은 언젠가의 작가 조앤 롤링처럼 노트북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써내려가고 있었다. 저마다의 사연이 커피 향과 함께 떠도는 이곳, 지난 4월 LA인근 이글락(Eaglerock)에 오픈한 파운드 커피다. 이곳 주인장은 스물아홉 살 먹은 한인 2세 애니 최씨. 이글락의 주요 상권을 형성하는 콜로라도 불러바드에서 동쪽으로 한참을 올라가 상가라고는 도통 찾아 볼 수 없이 휑한 이 곳, 손님이 찾아오기나 할까 싶을 만큼 외진 이 곳에 모던한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겨우 오픈 반 년 만에 각종 맛집 사이트와 주류 언론에서 선정한 LA 베스트 커피숍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건 더 더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해보는 생각 하나, 작은 카페 하나 오픈해볼까를 현실로 불러온 그녀에게서 들은 창업 스토리는 결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구름 낮게 깔려 커피 한잔 생각이 절실한 초가을 오후, 애니 최 사장을 파운드 커피에서 만나봤다.

#사회초년병의 길 찾기

LA에서 태어나고 LA에서 자란 그녀는 UC샌디에이고 졸업 후 대학시절부터 꿈꿔왔던 방송 편집자가 되기 위해 버뱅크에 있는 편집전문학교를 다닌 뒤 유명 방송제작사인 '뷰님 머레이 프로덕션'에서 편집 어시스턴트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그곳에서 그녀는 케이블 TV에서 방영된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와 '프로젝트 런웨이 올스타' 등 유명 리얼리티 쇼를 편집하며 2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방송일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오후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고된 일상이 이어졌고 무엇보다 헤드폰을 낀 채 화면 속에만 갇혀 사는 단절된 삶이 계속되면서 그녀는 사직을 결심했다.

"당시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갈등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 방송 편집은 아주 고독한 직업이었죠. 그래서 정말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평생 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를 찾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물론 겁도 났다. 오랜 시간 공들여 얻은 직장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그 막막함이야말로 가장 큰 공포였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1년을 쉬며 여행을 하기도 했고 웨딩 업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웨딩 플래너를 하면서 제 적성을 알게 됐어요.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는 절 발견했죠.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곳, 그게 카페라는 생각을 했죠."

#꿈을 향해 고고씽~

카페 창업이라는 목표가 생기자 그녀는 당시 커피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인 카페 데미타스(Cafe Demitasse)에 인턴으로 취직해 4개월 만에 샌타모니카점 매니저로 승진해 본격적인 커피숍 운영 공부에 돌입했다.

"너도나도 한다니까 덜컥 창업부터 하는 건 정말 도박이에요. 카페를 창업하고 싶다면 일단 커피숍에 취직해 바닥부터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겉으론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바닥부터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거든요." 그곳에서 1년8개월 동안 일하면서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동네 카페엔 거의 매일 같은 고객이 같은 시간대에 와서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고객의 이름을 외우는 건 기본이고 고객과 시시콜콜 수다도 떨고 어떨 땐 상담자 역할까지 하기도 하죠. 요즘 젊은 고객들에게 동네 커피숍은 단순히 커피만을 마시는 곳이 아닌 일상을 공유하고 때론 하루를 보내는 특별한 공간이거든요."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여름, 그녀는 본격적인 창업에 돌입했다. 당시 예상한 파운드 커피 창업비용은 10만 달러 선. 이 비용의 대부분은 데미타스 카페에서 근무할 때 친구가 된 커피 마니아 고객이 그녀의 창업 계획을 듣고 선뜻 투자자로 나서 충당했지만 창업이란 게 항상 그렇듯 예산을 초과하게 마련. 그래서 그녀가 생각한 것이 최근 젊은 창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디어 소셜 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Indiegogo.com). 이 사이트에서 그녀의 창업계획을 보고 동감한 생면부지의 네티즌들이 쌈짓돈을 모아 투자해줬는데 이곳에서 모은 자본금만도 2만 달러에 이른다. 그랬다.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친근한 동네 사랑방을 일구다

창업비용이 해결되자 일사천리로 그녀는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 인근인 지금의 점포를 계약하고 본격적인 오픈 준비에 들어갔다. 커피숍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커피콩은 데미타스에서 납품받기로 하고 각종 차와 음료는 커뮤니티 서포트와 고객들에게 신선한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그녀의 운영방침에 따라 모두 캘리포니아 산으로 결정했다. 이는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깐깐하게 따지는 주류사회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그녀의 세심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오픈과 동시에 특별한 스페셜티 커피숍을 고대했던 젊은 고객들이 몰려들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커피숍 오픈 뒤 그녀는 월급쟁이 매니저 때보다 훨씬 더 바빠졌다. 오픈부터 폐점까지 가게를 지키며 고객들과 수다를 떨고, 설거지에 청소를 하고, 종업원을 관리하고, 물건을 주문하고, 회계업무까지 보다보면 정말이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렇게 가게가 번성하니 당연히 2호점 오픈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녀가 손사래부터 친다.

"어휴 계획은 무슨 계획요. 지금은 하루하루 가게 운영하기도 바쁘고 힘든걸요.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커피숍을 안정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더 노력해야하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죠."

이처럼 그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수집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써달라며 앤티크 전화기 10여대를 무료로 빌려준 고객도 있을 만큼 현재 파운드는 이글락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동네 커피숍 파운드에 가면 무언가 행복한 일을 파운드(Found) 한 것만 같다. 혼자 앉아있지만 한 공간에서 같은 커피, 같은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곳. 아마 이곳 주인장이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소소하지만 아주 특별한 행복일는지도 모르겠다.

이주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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