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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내가 정신과 전공을 포기한 이유

모니카 류/방사선과 암 전문의

오래 전, 초창기 미국 생활 이야기이다. 마음 잡고 정신과 수련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수련을 마치기 전에 프로그램이 폐쇄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과 공부가 내게 맞지 않아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그만 둘 결심을 했다. 그리고 정신과 과장을 만났다.

"경청하지 말고 그냥 흘려 들으세요." 과장의 말이었다. 그는 환자가 겪는 정신적.정서적 어려움은 이해하되 자신의 문제로 만들지 말라며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정신과 의사로서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우리말에는 구분되어 있지 않는 '듣다'라는 단어를 잠시 생각해 본다. '경청(listen)'과 '그냥 듣는 것(hear)'은 구분된 능력이다. 당시 과장의 말을 일상생활에 적용시킬 수도 있다. 상대가 환자든, 가족이든, 누구든 간에 경청하되 자신의 문제로 삼는 것을 삼가고 객관적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훈련이 필요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환자들은, 아니 우리 인간들은 현재를 인식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 같다. 당시 내가 이해했던 환자들은 현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자신의 과거 스토리를 말했다. 그들은 말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오래 된 감정의 파일을 열며 놀라거나 아파하거나 분노하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문제의 답을 찾기도 했다. 여기에 진리가 있는 것 같다. 정신상담 중에 의사는 환자들이 자신을 재정비 하게끔 옆에서 듣고(hear) 있고 환자는 스스로 치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경청과 그냥 듣는 것 모두 중요한 기능이다.



당시 정신과를 떠나기로 한 내 결정의 핵심은 나의 좌절이었다. 입원 환자들은 치료 과정을 거치며 모든 고민을 털어내고 치유되어 퇴원한다. 그러나 가끔, 아니 나에게는 너무 자주처럼 보였던 그들의 재발은 나를 실망시켰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앰뷸런스나 경찰차에 실려 되돌아온 많은 환자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환자는 고쳐도 그들을 만든 환경을 고칠 수는 없다는 한계였다.

지난 달 한 선배의 초대로 가정폭력 피해자, 포스터케어가 필요한 어린이를 돕는 자선모금 파티에 갔다. 피해자들의 스토리는 처절했다. 그들이 참아낸 병든 공동체 '가정'에 대한 묘사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지옥이었다. 그 모임은 과거 나의 좌절을 다시 떠 올리게 했다.

그러나 모임에서 내가 본 것은 피해자들이 묶여 있는 환경에서 그들을 구출해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피해가 더 확대되지 않고 피해자에서 그칠 수 있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이 있다면 인간 정서와 사회성에 대한 교육 및 계몽이고 악순환과 발병의 예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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