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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길거리 벽화, 예술일까 낙서일까

오수연/문화특집부 차장

얼마 전 편집국장에게 'LA 벽화'에 관련한 취재계획서를 내밀었다. 한번 쭉 훑어본 국장은 "스트리트 아트? 낙서 아냐?"라고 반문했다.

사실 살짝 울컥했다. 하지만 국장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기자 역시 레저면에 한 번 소개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벽화를 '아트'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LA는 그래피티(낙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벽은 물론 표지판 문 창문 등 낙서 없는 곳이 없다. 아트로 인식하기에는 현실의 상황이 좋지 않다.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심지어 벽화 위에도 버젓이 낙서가 되어 있다. 안타깝다. 거리에 있는 작품이어서 겪는 수모다.

벽화는 거리의 미술관이다. 어느 때고 감상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손으로 만져봐도 된다. 물론 무료다. 미술관처럼 '플래시 금지'나 '만지지 마시오'라는 규정을 조금도 염두에 둘 필요도 없다. 그저 잠깐의 시간을 할애하면 무료로 개성있는 값진 작품들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벽화라고 하면 한국도 빼놓을 수 없다. 아니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역사는 짧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벽화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10년 사이 한국에는 벽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벽화마을이 등장한 것은 2006~2008년 사이다. 통영 통피랑마을과 이화동 벽화마을이 원조다. 그렇게 붐을 타기 시작한 벽화마을이 이젠 어림잡아 100여 곳 정도가 됐다. 대부분 낙후된 마을에 벽화가 그려졌다. 취지는 좋다. 마을을 살리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됐다. 몇곳은 한국에 가면 꼭 가 봐야겠다고 점찍어 놓은 곳도 있다.



하지만 걱정도 된다. 저러다가 한국 전체가 벽화로 뒤덮이는 건 아닐까. 테마는 다르겠지만 그 지역의 개성이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경상도는 경상도만의 활기찬 문화가 전라도는 전라도만의 구수한 멋이 있는데 '그나물에 그밥'이 되는 건 아닌가 해서다. 돌담은 돌담 그냥 그 자체로 멋이 있는데 벽화 때문에 돌담의 멋이 가려질까 걱정이다.

얼마 전 중국이 만든 짝퉁 스핑크스가 논란이 됐다. 중국이 이집트에 있는 스핑크스를 그대로 본떠 허베이성 스자좡에 실물크기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집트 정부는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 철거를 요구했고 결국 철거가 결정됐다. 이집트 여행을 꿈꾸며 스핑크스를 그려봤던 여행객들이 하마터면 중국에서도 스핑크스를 볼 뻔했다.

세계 곳곳에 있는 관광지는 그 곳만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있다. LA에 있는 벽화가 한국의 벽화와는 다르듯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꽃이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LA 벽화도 한번 더 관심을 갖고 바라봐 줬을 때 낙서가 아닌 아트가 된다. 낙서처럼 취급되고 있는 LA의 벽화지만 그것이야말로 'LA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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