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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만수 선생 한국에 공훈 기념비 제막

[LA중앙일보] 발행 2005/11/08 미주판 27면 기사입력 2005/11/07 18:01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무자 권익 앞장

류만수 선생의 유족대표와 진주 류씨 종친회 민족문제연구소 국가보훈처 관계자 등이  6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진주 류씨 문정공 묘역에서 류 선생 공훈비 제막식을 갖고 있다.맨 왼쪽이 류민 공보관.

류만수 선생의 유족대표와 진주 류씨 종친회 민족문제연구소 국가보훈처 관계자 등이 6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진주 류씨 문정공 묘역에서 류 선생 공훈비 제막식을 갖고 있다.맨 왼쪽이 류민 공보관.

LA총영사관 류민 공보관의 선친이며 독립유공자인 고 류만수 선생을 기리는 공훈 기념비 제막식이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진주류씨 문정공 묘역에서 지난 6일 열렸다.

이 기념비는 류 선생의 선비정신과 대동평화사상 선비정신과 유덕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광복회와 율곡문화원 유한림문화원 진주류씨 문정공파 종친회원들이 뜻을 모아 세워졌다.

1923년 생인 선생은 20세 때인 1943년 5월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에 취업 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을 모아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시위를 주도했다.

그 후 이 회사에 강제 수용되어 생활하다 회사를 탈출해 일본 내의 노동단체를 전전하며 일본으로 강제 수용되어 온 한국동포 구출활동을 한 후 귀국했다.

선생은 1945년 5월 현재 한국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동지 조문기.강윤국과 함께 일본총독부 고관과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애국충열동지들을 규합 대한애국청년단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이 단체의 의장으로 뽑혔다.

선생은 포츠담선언일인 1945년 7월 24일 친일 거두이며 일본중의원 의원인 박춘금이 소위 대의당이란 정당을 조직하고 내선일체와 조선인의 황민화를 부르짖으면서 서울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선생은 사제폭탄을 대회장에 설치 대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서울 수색변전소 공사장 발파 인부로 잠입해 다이너마이트를 어렵게 빼낸 후 안성 본가 다락방에서 동지들과 사제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류공은 이 사제폭탄을 갖고 경비가 삼엄한 대회장에 잠입해 연단과 복도에 각각 장치해 폭발시킴으로써 일본 조선군사령관을 비롯하여 일인 고관들이 혼비백산하는 등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대회는 무산됐다.

이 사건은 일본의 내선일체와 조선인 황민화 계획에 철퇴를 가한 것으로 국내외에 대한민국의 독립과 광복을 천명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으로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 정부로부터 5만 엔의 현상금이 걸려 수배를 받아오다 해방이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이 서거한 지 2년이 지난 1977년 유공의 뜻을 기려 독립유공자로 건국포장을 추서한 데 이어 1990년 훈격을 승격시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선생은 75년 52세를 일기로 병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김계갑 여사와의 사이에 장남 류민(LA 총영사관 영사) 차남 류세종 (과천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등 2남3녀를 뒀다.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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