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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끝내 쓸 수 없었던 '사건 기사'

[LA중앙일보] 발행 2015/11/14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11/13 20:13

정구현/사회부 차장

슬픈 소식은 전화벨부터 불길하다. 그리고 예감은 어김없다.

얼마 전 핏줄같던 친한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도 그랬다. 전화기 너머 비보를 전한 친동생은 울먹였다. "불쌍해서 어떻게 형…."

우리 형제와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같이 다녔고 미국에 와서까지 30년 넘게 가족처럼 지냈던 동생이었다. 한국에서 같은 교회를 다녀 부모님들도 서로 친했다.

일요일 저녁, 아파트 앞에서 옆집 남성이 쏜 총에 맞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여전히 먼나라 이야기처럼 겉돌았다. 멍하게 앉아있다가 문득 내가 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취재'를 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신문사 밥을 먹은 지 15년째다. 그간 '죽었다' '사망했다'로 끝나는 기사를 아마 수백 꼭지는 썼을 터다. 검시소를 들락거리면서 참혹한 시신들도 숱하게 목격했다. 쉽게 상처받는 성격도 아니고 나약함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게다가 사건 정황과 피해자, 가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자다. 그런데도 끝내 기사를 쓰지 못했다. 육하원칙의 건조한 문장 주어가 남이 아니었기에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겁하게 후배에게 기사를 떠넘겼다.

사건 발생 3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글을 쓰는 이유는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끝내 울음을 참았던 동생의 대견한 일곱살난 아들에게 아버지를 '이웃과 싸우다 총맞아 죽은 피해자'로 기억하게 할 순 없었다.

그는 범인이었던 옆집 남성과 싸운 일이 없다. 일부 독자들은 다투지도 않았는데 왜 옆집 범인이 그에게 총을 쐈겠느냐고들 한다. 범인은 정신이상자에 가까웠다. 죽은 동생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에게도 이유없이 시비를 걸었다. 한 이웃에게는 총기를 들이대고 위협하기도 했고, 아파트 발코니에서 허공에 총을 쏘기도 했다. 한 이웃은 그를 '시한폭탄'이라고 했다.

범인만큼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쪽은 아파트 건물주다. 범인의 위험한 행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고, 분명히 세입자들의 불만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가 적절했는지도 의문스럽다. 경찰은 범인을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크단다. 사건이 발생한 로스알라미토스에서 멕시코 국경 티후아나까지는 대략 3시간 거리다. 총 쏜 범인이 국경을 넘을 3시간 동안 경찰은 도대체 뭘 했다는 말인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범인과 이를 알고도 방관한 아파트 주인, 도주한 범인을 끝내 잡지 못한 경찰,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장례를 마친 날, 동생의 아버지께 저녁을 대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이었다. 마주앉은 아버지는 울음을 밥으로 삼켰다. 급히 미국으로 오느라 제대로 옷도 챙기지 못해 죽은 아들의 스웨터를 입고서였다.

밥을 다 먹고 날 껴안으면서 부탁이 있다고 하셨다. 범인을 꼭 잡을 수 있게 경찰에 자주 전화하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범인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다. 그 사람은 살아도 산게 아니야. 반드시 천벌을 받을거다."

아버지는 동생이 남긴 가족을 걱정했다. "이래저래 며느리랑 손주들이 힘들다. 자주 좀 챙겨줬으면 좋겠구나."

따뜻한 아버지를 유난히 닮았던 동생의 생전 얼굴이 겹쳐졌다. 집으로 오는 길에 10여년 전 그가 미국에 오기전 한 말이 떠올랐다. "형 나 미국에 살려고 갑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요."

그는 그 말대로 열심히 살았다. 가족없이 혼자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취직하고, 결혼해 아들과 딸을 뒀다.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 500명의 조문객은 성실한 삶에 대한 증거다.

동생의 아들이 자라 아버지에 대해 묻는다면 반드시 말해주려 한다. "지금이 마지막인것 처럼 열심히 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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