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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배꼽 인사와 '렛잇비'

김석하/사회부장

# 첨단 과학을 몰라도 인간은 어느 정도 복제가 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은 ▶직업 ▶인터넷 검색어 내역 ▶크레딧카드 명세서,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복제할 수 있다. 세 가지는 워낙 일상적이어서 '그저 하는' 습관의 영역인 것 같지만, 모두 복잡한 사고 과정의 결말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를 잘 분석하면 그 사람의 사고 체계가 보인다.

직업에서 한 사람의 철학 내지는 가치관, 인식 과정, 행태나 습성, 심지어 못된 버릇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구글이나 네이버의 검색어 히스토리에는 그 사람의 취미나 내면에 은밀히 감춰둔 재미와 흥미를 알아낼 수 있다. 또 크레딧카드 명세서에 찍힌 사용 위치와 돈 씀씀이만 봐도 행동 반경과 성향.기질, 사회적 직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 전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는 큰 딸내미한테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대부분 비슷한 아버지의 마음인데 하나가 튀었다. "전에 본 적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전에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 가라."

# 누구나 재미있게 살고 싶다. 또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두 단어의 공통점은 '미'자다. 아름다울 미(美)라고 짐작해왔다. '의(미)'의 뜻은 알겠는데 '재(미)'는 무슨 뜻일까. 그냥그냥 넘어갔던 이 말을 이참에 사전에서 찾아봤다. '의(意)'자는 예상대로였다. 뜻 또는 가치. '미'자는 아름다울 미가 아닌 맛 미(味)였다.



'재'자가 더 궁금해졌다. 어라, 한자어가 아니다. 그냥 우리 말이다. 뒤져보니 '자미'란 단어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재미의 어원이라고 했고, 어떤 곳에서는 재미의 잘못된 말이라고도 했다. 뜻은 불을(증가.번식) 자(滋)다. '맛이 더해진다, 증가한다'. 그렇다면 의미는 맛의 뜻 즉 맛의 가치다. 재미는 맛이 더해지는 풍성함. 직업은 의미로 입문하고, 재미로 버티는 일이다.

# 12학년 남학생이 전공과 관련해 물었다. "난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웃으며 생각했다. '뭘 해본 적이 있어야 뭘 잘하는지 알지. 많은 부모는 뭘 해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1970년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앨범을 나눠줬다. 고만고만한 흑백사진에 이름 석 자, 그리고 장래희망(직업)이 적혀 있었다. 옆반 별로 친하지 않았던 놈 사진 밑에는, 사…냥…꾼. 눈이 휘둥그레졌다. 12학년 학생에게 답했다. "직업은 우연히(accidentally), 갑자기(suddenly) 되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거 해봐라." 그 아이의 생각이 보였다. '난 뭐가 재미있지?' 직업은 재미로 입문하고, 의미로 버티는 일이다.

# 이민자 그룹에서 2세는 모순을 강요당하는 측면이 강하다. 정체성과 현지화. 특히 아시안 그룹이 그렇다. 한인사회의 경우, 그 출발은 배꼽 인사다. 어느 누가 개발했는지 몰라도 유치원의 3~4살 아이들은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90도 각도로 인사한다. 그 나이를 지나면 절대 안 하는 행동이다. 정체성의 강요가 극대화된 모습이다. 아이들은 불과 몇 년 뒤 눈꺼풀을 추어올리거나 손 한번 드는 인사로 현지화된다.

한국에서는 대입시험이 끝났고, 여기서도 대입을 위한 각종 시험이 얼추 마무리됐다. 부모 세대는 '살아보니'라며 전공 선택에서 사회적 정체성(正體性)을 강조.강요한다. "본질은 어떤 세상이 와도 돈벌이가 최고란다." 하지만 이는 다른 모습의 정체성(停滯性)이다.

배꼽 인사. 대학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는 오바마의 조언과 비틀즈의 노래를 들려줘야 한다.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직업은 행복을 넘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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