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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조선 최악의 임금

[LA중앙일보] 발행 2015/11/1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11/16 22:41

이종호/논설위원

링컨.워싱턴.루스벨트…. 최고의 미국 대통령 하면 늘 앞자리에 오르는 이름들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의 순위도 심심치 않게 조사, 발표된다. 박정희.노무현.김대중….

조선 국왕은 어떨까. 세종이 최고라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 태종.성종.숙종.영조.정조 등도 대체로 괜찮았던 임금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최악의 왕은 누구일까. 언뜻 연산군과 고종이 떠오른다. 10대 연산군(1476~1506)은 폭정과 방탕의 대명사였고, 26대 고종(1852~1919)은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 왕이어서다.

선조와 인조도 만만치 않은 혹평을 받는다. 이유가 있다. 14대 선조(1552~1608)는 임진왜란 때의 임금이다. 난세에 인물 난다는 말 그대로 민족 최대의시련기였던 이 때 이순신.권율.곽재우 같은 구국의 명장들이 나왔다. 퇴계 이황.율곡 이이.송강 정철.서애 류성용 같은 빼어난 학자들도 배출되었다. 하지만 정작 선조 자신은 무능했다. 뜻있는 신하들의 잇단 충언에도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지 못했고, 제일 먼저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몽진을 갔다. 그것도 모자라 압록강 너머 중국 땅 요동까지 달아날 궁리만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피폐한 나라를 추스르기는커녕 공신들의 공적을 폄하하기에 급급했다. 한마디로 위기 앞에서 자신의 안위만 살폈지 나라와 백성은 안중에 없었다.

16대 인조(1595~1649)도 무능하고 줏대 없기로는 선조 이상이었다. 서인 세력을 등에 업고 광해군을 몰아낸 반정(反正)의 주인공답게 직전 왕 때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되돌렸다. 신흥 청나라에 맞설 힘도 없으면서 종주국 명나라에의 충성이라는 대의명분에만 집착했다. 명-청 교체기의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한 치명적 과오였다. 그 결과가 정묘호란이요 병자호란이다. 왜란의 참화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이어진 전란으로 국토는 유린됐고 일국의 왕이 적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조선 역사 최대의 치욕을 당했다.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당시 상황에선 그게 최선이었다는 상황론도 있고, 아무리 무능했어도 찾아보면 한두 가지 잘 한 것은 있기 마련이라는 동정론도 있다. 하지만 인물 평가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이런 물타기다. 그렇게 치면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히틀러조차 할 말이 있다. 극진한 동물 보호론자였고 열렬한 그림 애호가였으며 소소한 일에도 눈물 흘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다지 않은가. 전체의 잘못을 도외시한 채 잘한 일부분만 강조하면 그때부터 역사적 평가는 왜곡으로 갈 따름이다.

최고, 최악의 리더를 꼽아보는 것이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취미놀음만은 아니다. 그들을 통해 잘한 것은 배우고, 못한 것은 반면교사 삼기 위함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공과는 가감 없이 기록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기준이 또 있다. 백성들에게 얼마나 희망과 자부심을 주었는가라는 것이 그 하나요,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고통과 절망 속에 몰아넣었는가 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단순히 배 불리 먹고 살게 해 준 것만이 모든 과오의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일찍이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세 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첫째는 천명(天命)이요 둘째는 대인(大人)이며 셋째는 성인의 말씀(聖人之言)이다(논어 계씨편)."

천명은 시대적 소명, 즉 민심을 말한다. 대인은 덕망 높은 전문가이고 성인의 말은 역사의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민심을 거스르고, 전문 지식인들의 의견을 묵살하며, 역사의 가르침을 업신여기는 사람을 일러 공자는 소인배라 칭했다. 연산군과 고종, 그리고 선조와 인조, 조선 최악의 왕으로 평가받는 이들의 공통점도 결국은 이것이었다.

지금 우리 곁의 지도자들은 과연 어느 쪽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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