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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YS가 닮은 세 사람

[LA중앙일보] 발행 2015/11/24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11/23 23:10

이종호/논설위원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선 딱 한 번 보았다. 1987년 부산 유세 현장, 100만 인파 속의 한 사람으로서였다. YS와 김대중(DJ) 두 야당 거물이 대선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각자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왔을 때였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고생 마이 했다 아이가. 그만큼 했으면 영삼이가 한 번 해야제. 영삼이 만한 대통령감도 없는 기라."

돌아보면 부끄러운 지역주의였고 치기어린 감상주의였다. 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논점은 그게 아니다. 영남 사람들에게 YS는 누구에게나 '영삼이'로 불릴 만큼 만큼 편하고 만만하고 친구 같은 정치인이었다는 말이다. 호남 사람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칭했다는 것과는 달리.

이런 추억 말고도 개인적으론 YS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세 사람이 있다. 책 속 주인공이기도 하고 실제 역사 속 인물이기도 한 사람이다.

첫째는 삼국지 주인공 유비다. 고우영은 '만화 삼국지'에서 유비를 '쪼다'로 묘사했다. 언뜻 흉 같지만 사실은 흉이 아니다. 어리숙하고, 손해 보는 듯한 일만 골라 좇았고, 사리사욕 챙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 그러면서도 대의명분을 최고의 자산으로 삼았던 사람이 유비다.

YS가 그랬다. 일견 무지하고, 무식하고, 어리석어 보였지만 대의명분에 관한 한 양보할 줄 몰랐다. 그에게 대의란 민주화였고 군정종식이었으며 문민정부의 실현이었다. 남긴 재산이라곤 상도동 집 한 채뿐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천문학적 재산을 챙겼던 모모 대통령들이 떠올라 어렵게 나라를 꾸렸던 유비가 더 생각이 난다.

유비는 용맹도 지략도 부족했다. 하지만 인재를 품고 키우는 데는 그만한 이가 없었다. 관우, 장비, 제갈량, 조자룡이 유비의 안목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YS도 그랬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그의 말 그대로 YS는 전문가와 재목을 알아봤다. 그래서 YS 옆에는 늘 최고의 인재들이 몰렸다. 노무현, 이명박, 이회창, 이인제, 손학규, 이재오, 김무성, 김문수 등 이후 한국 정치의 많은 주역들 역시 YS가 발탁한 사람들이다.(그들이 지금 한국 정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두 번째는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鄧小平)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의미다. YS에겐 '3당합당'이 곧 흑묘백묘론이었다.

YS는 유신 및 신군부 그리고 친일 세력과의 야합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3당합당으로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당시 논리가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공산 중국의 굴기와 급성장이 자본주의와 손잡은 흑묘백묘론의 열매인 것처럼, YS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는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은 YS식 '배신의 정치'가 일궈낸 역설이다.

끝으로, YS는 성경 속 인물 베드로도 연상시킨다. 그렇게 보면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바울과 비슷했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 늘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반대로 바울은 치밀하고 주관이 뚜렷했으며 감옥에서도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써서 남겼을 정도로 지적이고 학구적이었다.

YS와 DJ가 딱 그랬다. 한때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YS는 '3당 합당'이라는 배신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베드로와 바울이 목숨 걸고 매달렸던 것이 예수의 복음이었듯이 젊은 시절 YS와 DJ는 '민주화'라는 민족의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었었다.

지금 온라인에선 두 얼굴의 YS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민주 투사로서의 YS가 그 하나요 IMF 국가부도를 부른 장본인으로서의 YS가 다른 하나다. 하지만 양쪽 모두 동의하는 것이 있다. 비록 YS가 허물이 많았다 하나 지금은 그만한 인물조차 없다는 것이다. 고만고만한 난쟁이 정치인들이 벌이는 '찌질한' 한국 정치에 대한 장탄식이자 안타까움인 것이다.

거산(巨山)이 떠나는 길, 한국 정치의 큰 산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어서 마음이 헛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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