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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문제 족집게 예측, 어떻게? 과학의 힘이죠

온라인·SNS통해 기출문제 복구
아르바이트 시켜 문제 암기복원
"3번 보면 한 번은 걸린다" 자신감

대입 시험의 대명사 SAT는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치른다. 하버드와 옥스포드 같은 명문학교는 물론 영미권 대부분의 대학들이 표준시험 성적으로 활용, 신입생을 뽑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부모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으로 봐서는 촌구석인 한국에서 칼리지보드를 비웃기나 하듯이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SAT문제를 유출해서 고득점반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녀를 기르고 있는 주부의 증언을 토대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어머니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삼세판

미국에서 낳은 희망이를 미국 대학으로 보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국의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주변 이야기를 듣고, 외국인 학교를 보낸 결과였다.

대치동에서 미국 대학 입시로 소문난 '그학원'에 상담 약속을 하고 신청서를 썼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원서를 써봤지만 애 학원 보내는데 이렇게 길고 자세한 가족내력까지 써야하는 줄은 몰랐다. 상담실장을 만났다. 그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모니터를 살펴보면서 내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희망이는 아이비리그급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것같습니다."

귀가 번쩍 뜨였다. 희망이를 낳은 미국 병원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의사선생님이 자상하고 멋있어서 인상에 남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희망이 실력이 그 정도가 될까요."

상담실장은 조용히 손가락 3개를 들어 보였다.

"SAT시험을 잘 보면 충분합니다. 다른 스펙도 저희가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상담실장이 내보인 3의 의미가 뭔지 알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데 실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삼세판입니다. 3번중 한번만 다 쓰고 나오면 됩니다."

희망이는 이후 '그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학비는 매달 1000만원에 달했다. 대충 헤아려도 1억이 된다. 그래도 미국 기숙사 고등학교에 유학 보내서 공부시키는 것보다는 싸다.

SAT시험은 상담실장이 골라준 날짜에 3번의 시험을 예약해서 보게 했다. 실장은 "3번의 기회가 있다"며 "만약 시험장에 들어가서 '그문제'가 아니면 바로 나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실장은 3번중 한번은 '그문제'가 나온다고 장담했다. 그러므로 시험장에 들어가서 '그문제'가 아니면 바로 나와서 취소를 하라고 했다.

시험은 한국에서 보지 않았다. 친척이 있는 일본에서 시험을 보게 했다. 희망이 친구들중에서 괌, 싱가폴, 홍콩, 태국에 가서 시험보는 친구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제 따져보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약간의 부아가 났고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집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들 다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2번째 시험을 본 희망이가 시험을 잘 봤다고 전화를 해왔다. 수화기 너머로 희망이는 약간은 피곤하지만 들뜬 분위기였다.

첫 시험 직전부터 희망이는 실장이 준 문제와 답을 외웠다. 시험문제가 다르게 나오면 어쩌려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실장은 희망이에게 줄줄 외우게 했다. 첫 시험장에 들어간 희망이는 문제를 받자마자 생전 처음보는 문제라며 바로 나왔다. 그리고 즉시 취소했다. 공식적으로 희망이는 그 시험을 본적이 없다. 세번째 시험도 예약해뒀지만 볼 필요는 없게 됐다.

학원비가 비싸서 큰 부담이었지만 실장을 만나서 내렸던 결정은 잘했던 것같다. 희망이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두달 후에 '그학원'에 입학하려던 희망이 친구 하나가 들어오지 못했다. 실장이 석달치 학원비를 내라고 했는데 그 부모가 그런게 어디 있냐고 거절했다고 한다.

시험지 팔아요

희망이가 한참 '그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옆집 아들 경원이 엄마가 황당한 얘기를 해왔다. 경원이가 다니는 대치동 학원에서 미국 SAT1, SAT 2 과목별 문제를 판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문제집도 아니고 시험문제를 팔다니?"

희망이에게는 비밀로 하고 경원이 엄마에게 물어봤다.

"시험을 주관하는 칼리지보드에서 제공하지 않는 문제를 누가 그냥 주나요? 문제를 만드는 기관이 그렇게 허술해요?"

경원이 엄마도 다른 족집게 학원에서 듣고 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들어봤다.

"시험 문제를 조직적으로 빼돌려서 파는 조직이 있다고 해요. 시험문제를 유출하는게 아니고 복원하는 것인데 시험 만드는 데가 문제를 반복해서 쓰기 때문에 거의 원본이라고 해요."

알고보니 문제 복원 조직은 매우 조직적이었다.

"대개 시험이 끝나면 시험 지문이 어떻고 문제가 어떻고 하면서 구글 플러스 같은 온라인에 관련 정보가 쌓이게 되고 이를 조직적으로 수집해서 문제를 짜깁기 해서 복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경원이 엄마에게 들은 게 다가 아니었다. 희망이의 SAT시험 과정이 완전히 끝나고 실장을 또 만났다.

"문제 지문을 분석해서 어떤 책에서 나왔는지, 어떤 잡지인지,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온라인 짜깁기를 하다 보면 틀릴 수도 있지 않나요. 실장님 대단하세요."

고마운 마음에 몇마디 칭찬을 해줬더니 실장은 바로 자신들의 복원 방법을 알려줬다. 수험생 일부를 조직으로 활용, 사람마다 할당된 문제를 외워서 나중에 복원하는 방식을 쓴다는 것이다.

"외우는 것이 목적인 아르바이트 학생의 포토제닉한 기억력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냅니다. 이것은 훔치는 게 아니라서 나중에라도 큰 문제가 안 돼요."

실장의 당당함에 내심 안도했다.

점쟁이가 있나

이제 희망이에게 어떤 문제를 줬는지, 어떻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게 했는지는 알게 됐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어떻게 문제가 여러 세트였을텐데 희망이가 공부한(?) 문제가 그때 나올지 알았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의문은 실장과 원서 작성 과정에서 풀렸다.

"실장님이 제때 SAT시험을 끝내주셔서 학교 공부도 제대로 했습니다. 감사드려요."

"희망이가 잘 따라와 준 덕분이죠. 애들에 따라서는 문제를 알고도 시험을 못 마친 아이도 있어요."

"그런 애들은 어떻게 해요?"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죠."

"저희가 족집게 문제집을 여러 개 갖고 있어요. 이거 말씀 드리면 안되는데 시험장에 아르바이트 학생을 1인당 10만원씩 주고 들여보네요. 그러면 문제를 외워가지고 나옵니다."

실장은 이렇게 복원된 문제를 강의 교재로 쓰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래도 그 많은 문제는 어떻게 그날 나오는지 아시나요."

실장은 손가락을 입으로 모아 입막음 제스처를 했다.

"과학의 힘이죠."

"네, 점쟁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과학적으로 어떻게…"

"이 업계에 있다 보면 다 알게 됩니다. 통계적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예측하는 것이죠."

실장은 시험 출제 기관인 칼리지보드가 문제를 만드는 데 신경을 쓰지만 문제은행 스타일이다보니 문제를 여러 번 써야 하고 그래서 규칙적으로 문제를 쓰는 바람에 예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2년 전 12월 시험문제가 3년 전 6월 문제와 같을 수 있습니다. 몇 년 따져 보면 맞아 떨어집니다. 적중률이 높은 이유가 됩니다."

"그래도 칼리지보드에서 공개를 안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더 값어치가 있게 됩니다."

아무래도 이해가 갈 듯 말듯했다. 하여간에 칼리지보드의 문제은행식 운영의 허점을 파악해서 악용하고 있다. 좀 더 친해지니 실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조직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문제집 거래는 전문브로커가 끼어서 5000만원에 구입돼 학원 강의 교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족집게 학원에서는 그 문제를 통째로 암기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희망이는 죄가 없다. 다행이다.

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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