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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20] '메세지 남기지 마세요'

김완신 편집위원

첨단 과학시대에 살지만 기계와는 거리가 먼 친구가 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복잡한 기계는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러다보니 휴대전화가 있지만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이 전부다. 심지어 자신의 전화번호도 기억 못해 종이에 적어 전화기 뒤에 붙여 놓고 있다. 전화기에 수많은 버튼이 있지만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받고 거는 것만 사용한다.

이 친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휴대전화에 메시지를 남겼는데 왜 연락이 없냐는 불평을 자주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성화가 심해지자 이 친구는 궁여지책을 생각해냈다. 휴대전화 작동법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다는 직장동료에게 부탁해 자신의 전화기 보이스 메일에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녹음해 놓았다.

"이 전화기는 메시지를 체크할 수 없으니 메시지를 남기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도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가 못 받으면 어김없이 이 메시지가 들려온다.

메시지를 녹음한 후부터는 주위 사람들의 불평이 사라졌다고 한다. 메시지 체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면 못 배울 것도 없지만 메시지를 듣기 위해 이것저것 버튼을 누르면서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살자'가 그의 지론이다.

한동안 컴맹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디맹'이라는 단어가 새로 생겼다고 한다. '디지털 까막눈'을 이르는 말이다.

휴대용 전화기 MP3 멀티미디어 PC 등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를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생활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관심을 갖고 배우지 않으면 대부분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기능들이 오히려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 불편을 주고 있다.

직장인들이 아침에 출근해 이메일을 체크하는 것은 10여년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인터넷도 여기저기 들어가 봐야 하는데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기술문명이 편리라는 명분으로 생활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단순하게'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이 방해받고 있다.

북미에 퍼져 있는 아미시 공동체는 18세기 전통 생활방식을 고집하면서 아직도 운송수단으로 마차를 사용하고 전기와 전화와 같은 문명을 거부하고 있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생활이다. 컴퓨터라는 기계가 없어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있다.

이같은 생활이 불편할 것 같지만 지난 25년사이 아미시 공동체의 인구가 두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를 보면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단순한 삶에의 동경은 여전하다.

또한 수년전에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단순하게 사는 법' 세미나에는 정보통신관련 과학자 5000여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뤘다. 이들 중 일부는 강연을 듣고 실제로 우물을 파고 가축을 기르는 전원생활로 돌아갔다고 한다.

12월은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다. 정리해야 할 것도 많고 해결해야 할 것들도 많다. 한해를 살아오면서 여기저기 맺어온 일상의 고리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비우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손에 쥐는 것만을 생각하며 숨가쁘게 살아온 시간들이다.

또 한해를 보내면서 단순하게 사는 것이 그다지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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