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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천재들의 글쓰기

이종호/논설위원

#. 조선왕조 500년 최고의 천재라면 단연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다. 신사임당의 아들로 호조.이조.형조.병조 판서를 두루 역임했던 조선 최고의 학자다. 그의 천재성은 벼슬길에 나아가기까지 9번의 과거시험에서 모두 장원으로 급제했다는 데서 단적으로 증명이 된다.

율곡은 겨우 3살 때 석류가 벌어진 것을 보고는 '석류피리쇄홍주(石榴皮裏碎紅珠)'라는 시를 지었다. '석류 껍질 속에 부서진 붉은 구슬이 점점이 박혀있네'라는 뜻이다. 보통 아이들이 겨우 말을 배울 시기에 율곡은 이렇게 이미 자기 생각을 시로 표현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 율곡이 한 수 접고 들어간 천재가 있다. '나의 전생은 그였다'고 했을 정도로 깜빡 넘어간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다. 최초의 한문소설집 '금오신화'의 저자이기도 한 김시습이 3살 때 다듬이질 하는 어머니를 보며 지었다는 시는 이렇다. '무우뇌성하처동(無雨雷聲何處動) 황운편편사방분(黃雲片片四方分). 비도 안 오는데 어디선가 천둥소리.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라는 뜻이다.

김시습은 5살에 이미 경서(經書)에 통달해 세종을 놀라게 했다.하지만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보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출가해 평생을 방랑 승려로 살았다. 하지만 그는 남긴 글로 사후에 더 유명해졌다. 훗날 선조는 그의 글을 묶어 '매월당집'을 출간토록 했다. 조정이 개인 문집을 내 준 것이다. 또 한참 뒤 정조는 또 벼슬까지 내려 그를 이조판서에 추증하기도 했다.



천재는 타고 난다.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하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타고난 천재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천재다. 율곡은 어릴 때부터 모친 신사임당에게서 사서(四書)를 배우며 남다른 향학열을 드러냈다. 김시습 역시 옛 선현들을 모범삼아 끊임없이 글을 읽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글 좀 쓴다는 선비 치고 평소 글 읽기에 소홀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글쓰기가 재능이긴 하되 치열한 노력과 연습 없이는 결코 열매로 맺어질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이 글쓰기 천재들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이다.

#. 신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난감해진다. 단순히 글을 '쓴다'는 것과 '잘 쓴다'는 것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입문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겐 다음과 같이 모범답안을 내민다.

첫째, 일단 뭐든지 써 보시라. 맞춤법 좀 틀리면 어떤가. 표현 좀 어색하면 어떤가. 처음부터 멋진 시나 소설, 논문 작품 쓰자는 것 아니지 않는가. 내가 먼저 써 봐야 남의 글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알아보는 눈이 생기고, 나도 그렇게 써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둘째,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제일 중요한 것이 요점 정리다. 지금부터라도 무엇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있다면 그 생각을 요약 정리하는 연습부터 해 보시라. 그래야 생각하는 힘도 생기고 더 잘 표현하는 요령도 개발된다.

셋째, 글이 좀 된다 싶으면 그때부터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 글쓰기에 정답은 없지만 어법 맞춤법 등 지켜야할 규칙은 있다. 솔직히 요즘은 누구나 쉽게 등단하고 쉽게 작가 호칭을 얻다보니 이런 기본에 약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 명색이 내가 수필가인데, 작가인데, 책까지 냈는데 하며 공부 않고 앉아만 있다간 금세 바닥이 드러나고 만다.

2주전 시작한 중앙일보 글쓰기 강좌가 다음 주까지 이어진다. 뒤늦게 글쓰기에 관심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필명이 꽤 드러난 분들도 참석하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공부엔 나이가 없고 자존심도 필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가 모두 율곡이나 매월당 같은 천재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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