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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불안증 환자 '제니'의 약물중독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깨끗한 유니폼을 입고 찾아온 제니를 처음 본 것은 3~4년 전이었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빨라져 응급실에 갔더니 의사가 심한 불안증세 때문이라면서 정신과를 권유했다고 한다. 제니는 엘살바도르에서 태어나, 변변히 학교를 다닌 적이 없지만 영어를 잘하는 영리한 여자였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이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왔다. 미국에서 중고책을 파는 대형 서점에 취직한 제니는 시간이 나는 대로 비치된 책을 읽어가며 영어는 물론 미국문화까지 익혔다. 가게 주인인 여사장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미혼이었다. 제니를 마음에 두었던 사장은 아들과 제니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가게를 처분해 그 돈으로 놀며 살았다. 일은 안하고 클럽을 전전하는 남편을 지켜보던 그녀는 직업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마사지 미용 전문학교였다.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에 입었던 옷이 직업학교 유니폼이었다.

남편의 나태한 모습을 보던 어느날 그녀는 심한 공황 증세를 경험하며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다. 응급실 의사에 의하면 심장마비라고 공포에 떨며 병원에 오는 환자들의 절반이 그녀와 같은 심한 불안이나 공황증세 환자란다. 나는 제니에게 능력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신감을 기를 기회가 없었던 남편에게 시간을 주자고 했다. 아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천천히 자존감을 갖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더욱 분발해 면허증도 얻고 일을 하면서 자신감을 키워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응급실 의사에게서 처음 처방 받았던 안정제인 제넥스를 계속 쓰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악물은 오래 쓰다보면 습관성이 생기면서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초기 부작용이 적어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약들이지만 내성이 생기면 약의 용량을 늘여야 한다. 게다가 약을 중단하면 금단현상이 와서 심하면 온몸이 떨리며 불안해지고 경기를 일으키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만성 불안증세가 있는 경우 정신과 의사들은 항우울제를 권하는데 그럴 경우 환자들은 불안하기만 한데 왜 우울증세를 치료하는 약을 복용하냐고 항의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울증세나 불안증이 모두 몸 안의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증세임을 설명한다. 그리고 항우울제인 프로작, 팩실, 졸로프트, 셀렉사, 렉사프로 등의 약물이 불안증을 치료하고 우울증도 예방해 준다고 말해 준다.

인간관계에 능숙한 제니도 두뇌에서 분비되는 뇌전파 물질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미 제넥스의 필요량이 0.25mg에서 1mg으로 올라갔다. 내성이 생겼다는 증거다. 간신히 달래서 졸로프트를 쓰게 했다.

제니와 같이 어려운 인생을 슬기롭게 헤쳐온 여성도 정신질환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일시적인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거나, 순간의 치료효과에 길들여져 적절하지 않은 약물을 택하고 중독돼 가기도 한다.

약 복용이 그렇듯이 인생도 마찬가지다. 제니가 병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인생에서도 기필코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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