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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 희노애락-2005 한인사회 프리즘] 손주들이 전화 해줄때 '행복해요'

[LA중앙일보] 발행 2005/12/14 미주판 1면 기사입력 2005/12/13 20:41

'10년지기' 박윤자-김영천 팔순 할머니

박윤자(오른쪽).김영천 할머니가 오후 따뜻한 햇살 아래 마주 앉았다. 두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39;인생이 참 짧다&#39;고 했다. <백종춘 기자>

박윤자(오른쪽).김영천 할머니가 오후 따뜻한 햇살 아래 마주 앉았다. 두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이 참 짧다'고 했다. <백종춘 기자>

살아간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하루하루는 과거가 되고 쌓인 지난 날의 무게가 육신의 힘을 압도하는 순간 모두가 노인이 된다.

그래서 늙어간다는 것은 때로는 지혜로워 지는 일이고 때로는 서글픈 일이다.

10년지기인 두 할머니가 마주 앉았다. 박윤자(81)할머니는 2년전 남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고 김영천(80)할머니는 세살 위인 남편과 살고있다.

김영천=권사님 집에 오는게 몇년만인 것 같네요. 건강하지죠?

박윤자=그럼요. 권사님도 여전히 멋쟁이예요.

(한인 할머니들은 서로를 '권사님'으로 호칭하는 게 보통이다)

김=집에 화초들을 잘 가꿔 놓았네요. 너무 예뻐요.

박=아침 6시쯤 일어나서 제일 먼저하는 게 화초 물 주는 거예요. "잘 잤냐?" 인사도 하고. 그러곤 양로보건센터가서 놀다와요. 김 선생님도 안녕하시죠?

김=네. 얼마전 할아버지가 사고로 응급실까지 갔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 싶어요.

박=두 분이 나들이 하는 거 보면 부러워요. 나도 우리 할아버지랑 마켓가고 아침에 차 한잔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 할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2년이 지났네요.

(많은 할머니들은 남편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김=위암이었던가요? 그때 권사님 병수발하느라 힘들었죠.

박=힘들긴요. 얼마 전엔 앨범보다가 쓸데없는 사진을 찢었어요. 괜히 더 생각만 나서….

김=벽 한복판에 저렇게 멋있게 걸려있는 박 선생님 사진은 뭐고요?(웃음) 할아버지 있어야 뭐 해요. 괜히 이것저것 시키기나 하고 말도 잘 안 듣고.

박=난 요즘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로 생각날 때가 집에 이런저런 영어 메일 왔을 때예요. 그이가 대충 알아서 했는데. 그거 들고 하루종일 여기저기 찾아다닐라면 힘들어요.

김=젊은 사람들한테는 별거 아니지만 우리한테는 중요하죠.

박=할아버지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때는 친구없이 혼자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예요. 친구들 만나라고 해도 '뭐하러 만나'하면서 혼자 울타리를 치죠.

김=그렇게요. 자기의 위치가 떨어진 걸 인정할 때는 안쓰러워요. 옛날에는 당당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는데…. 괜히 트집잡고 그럴 때는 짜증도 나지만 불쌍하기도 하죠. 자제분들은 자주 찾아와요?

박=애들이 놀러올 때가 살만나죠. 이번에 손주가 이라크 파병갔다가 건강하게 왔는데, 자 보세요. 잘 났죠?

김=저도 아들, 손주 전화받을 때가 행복해요. 뭐 큰 효도있나요. 전화라도 자주하면 그뿐이죠.

박=우리 노인들이야 똑같은 마음이죠. 그저 자식들 건강하게 잘 사는 거.

김=매일 기도하죠. 큰 병이나 치매 걸려 자식들 고생 안시키게 해달라고요.

박=아무튼 나라에서 우리같은 노인네들 굶기지 않으니 그게 정말 고맙지 뭐예요.

김=맞아요. 집착과 욕심만 버린다면 늙어가면서 더 평화로워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석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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