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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다시 '이재민'이 되다

김완신/논설실장

다시 '이재민'이 됐다. 이번이 3번째다. 재해의 '종류'로 구분하면 3번째이지만 횟수는 더 많다.

미국 와서 처음 이재민이 됐던 것은 1994년 노스리지 지진 때였다. 당시 살았던 곳이 그라나다힐스였다. 지진 진앙지에 인접한 지역이다. 집 곳곳에 금이 가고 가구들은 깨지고 전기와 개스도 끊겼다. 이재민이 되어 '피난'을 갔다.

두 번째는 산불이다. 지진을 겪었던 그라나다힐스를 떠나 이사간 곳이 지금 살고 있는 포터랜치다. 동네 뒤편으로 산이 있어 불이 자주 난다. 19년째 살고 있는데 조금 과장하면 2~3년에 한 번꼴로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했다. 대부분 산불이 나면 주의경보만 내려지고 넘어가지만 그중 몇 번은 실제로 주민 대피령이 발동됐다. 이사간 후 처음 대피령이 떨어졌을 때는 남들 하는 것처럼 사진 앨범과 서류, 증서 등을 갖고 나왔다. 그런데 몇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대피를 자주하다 보니 나중에는 이력이 생겼다. 그후로는 문서를 챙기지 않고 나들이하듯 몸만 나왔다.

2008년 세스넌 산불이 났다. 포터랜치 인근 1만5000여 에이커를 태운 대형 화재다. 집 뒤쪽까지 불이 옮겨온 날은 마침 콜럼버스데이 휴일이었다. 경찰은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포터랜치로 올라가는 큰길을 막은 후 출입을 제한했다. 매캐한 공기와 날리는 재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피난'을 갔다.



이번에 또 이재민이 됐다. 포터랜치 뒷산의 알리소 캐년 저장소의 개스 유출 때문이다. 지진과 산불에 이어 개스 유출로 다시 이재민이 됐다. 저장시설이 바로 집 근처에 있어, 유출 개스로 두통과 어지럼증, 메스꺼움을 겪다가 집을 나왔다. 지난 10월23일 시작된 유출을 복구하려면 최대 4개월에 소요될 것이라 한다.

한국에 살 때를 생각해보면 이재민이 됐던 기억은 별로 없다. 흔했던 홍수나 화재 피해도 겪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여러 차례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됐다. 현재는 남가주 개스컴퍼니에서 제공한 무료 임시 거처로 옮겨 와 개스 유출로 인한 고통은 벗어났다. 집을 떠나 생활에 다소 불편을 겪기는 하지만 '이재민'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미안한 상황이다. 혹독한 추위에 내몰리지도 않았고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도 아니다.

지구촌에는 도움이 필요한 진짜 이재민들이 많다.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내전으로 살던 곳을 떠나는 난민들도 있다. 시리아에만 400만여 난민이 발생해 주변 국가를 떠돌고 있다. 이중 반수를 차지하는 어린이들은 추위와 영양실조로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난민에 유럽과 미국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도덕성'을 단지 전쟁이나 폭력 등의 악을 행하지 않는 소극적인 개념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는 공저 '도덕적 불감증'에서 '타인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것'도 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전쟁과 테러, 홍수 등의 재난은 즉각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지만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약자들은 항상 소외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테러는 계속되고 내란은 끝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의 굴레에 얽매이지만 양지에 선 사람들의 도덕성은 작동되지 않는다.

개스 유출로 임시 거처에 머무는 한 포터랜치 주민은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낼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안타깝다"고 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돌아갈 집도 없는 난민들이 많다.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기에는 생존의 문제가 더 절실하다. 개스 유출로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되어 난민들의 고통을 다시 생각하는 쓸쓸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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