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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 희노애락-2005 한인사회 프리즘] 마음속 구멍 '가족이 없다'

[LA중앙일보] 발행 2005/12/27 미주판 3면 기사입력 2005/12/26 18:51

홈리스 여인 자식얘기에 눈물만

다운타운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인 노숙자 여성. 이들은 노숙 시설에서 남자들의 폭력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두번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다운타운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인 노숙자 여성. 이들은 노숙 시설에서 남자들의 폭력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두번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슬픔은 저 밑에 꼭꼭 숨어있다. 드러내기 싫다.

또 아플까봐. 혹 덧날까봐.

슬플 哀자는 '입 구'(口)와 '옷 의'(衣)가 합쳐져 있다. 옷(衣)고름을 입(口)에 물고 숨죽여 흐느끼는 애절한 모습이다. 울음이 쏟아지는 절망을 넘어 어깨만 들썩이는 서글픔.



23일 오후 3시 '이름도 없는' 그녀는 다운타운 5가와 샌 줄리안 만나는 곳에 서 있다. 희끗희끗 색바란 머리를 보면 50대 초반이다.

홈리스 밀집지역에서 그녀가 쓴 하얀 모자가 눈에 띈다. 왜 여기 서 있어요? 대답이 없다. 어떻게 여기(유니언 미션 셀터)에 오게 됐나요? 대답이 없다. 가족은 어디에 있어요? 또 대답이 없다.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 "이번 겨울은 따뜻해서 별로 필요한 것 없어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모레가 크리스마스인데 자녀들 보고 싶지 않아요? 잠깐 눈물이 스쳤다.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하루종일. 아무도 오지않는 곳에서 누군가 꼭 올 것만 같이.

그날 저녁 6시 또 한 명의 한인여성이 다운타운에 서 있다. 신영자(73) 할머니. 몇 달 전 신 할머니는 홈리스 생활을 하며 구타를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이날 그녀는 살고 있던 미션을 뛰쳐나와 거처할 곳을 찾는다며 도움을 청했다. 또 맞고 있는 것이다. 몇몇 한인봉사단체에 전화를 했다. 사정 이야기를 하자 한 곳에서는 "그런 분은 우리가 모실 수 없다"고 거절했다. 자신들은 홈리스를 돌보아주는 단체가 아니라고 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그분은 나이가 많아서 모실 수 없다"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1시간여를 어둠과 추위가 시작된 다운타운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결국 어렵게 한 곳을 찾았지만 '며칠만'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는 그날 밤 자기 한몸을 눕힐 곳을 '서럽게' 구했다.

택시를 모는 제임스 조(37)씨는 2년전 이혼했다. 6살난 딸아이는 아내와 산다. 지난 주말인 17일에 딸을 만나서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다. 크리스마스 날은 전 아내가 친청이 있는 애틀랜타로 딸과 여행을 가기 때문이다. 딸에게 산타할아버지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올해도 여의치 못하다. 12월이 빨리 갔으면 한다. 연말에는 집이나 차안이 더 컴컴한 것 같다. 그리고 '배가 안고팠으면' 좋겠단다. 새벽에 혼자먹는 설렁탕은 비참하다고.

이중근(53)씨는 지난 봄 11살 외아들 응재를 잃었다. SSPE라는 희귀병을 앓고 2년여를 투병생활을 하다 눈을 감았다. '나 죽으면 아빠 외로워서 어떻게 하지' 하며 오히려 위로했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없는 첫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쓸쓸했다. 너무 보고싶었다. 옆에 누워있기만 해도 좋으련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에게 슬픔은 아무리 애를 써도 사그러들지 않는다.

반짝이는 연말의 불빛은 슬픈 사람들의 눈망울이다.

김석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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