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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마음공부를 위한 기도

[LA중앙일보] 발행 2015/12/15 미주판 28면 기사입력 2015/12/14 17:57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초기불교에는 소원을 비는 일반적 의미의 '탄원기도(Petitionary Prayer)'가 없었다. 부처님도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신들이 우리의 소원을 빌 대상이거나 우리의 해방을 도와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일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초기불교를 전공한 일부 불교 학자들은 '기도'를 하는 원불교는 불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원불교가 불교냐 아니냐를 떠나서, 기독교에서처럼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원불교에도 기도는 분명히 존재하고, 원리나 방법에 있어 기독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말로 기도를 하면 '신(God)'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실까. 영국 국민은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신이여, 자비로운 우리의 왕을 구하소서! 존귀한 왕으로 오래 살게 하소서!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 (God save our gracious Queen! Long live our noble Queen! God save the Queen!)" 하는 국가를 부르지만, 실제 영국 왕가의 평균 수명을 조사해 본 결과 일반인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라고 해서 기도의 효력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인정하는 수준은, 기도에 집중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잡념이 사라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편안한 마음은 모든 일을 보다 수월하게 이루게 해 준다는 상식적 수준의 축복이다. 이는 초자연적인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로부터의 위력을 전제하는 종교가의 기도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것이다.

제사나 기도 때 위력에 대해 염려하던 지방 교무의 질문에 대종사께서는, "네가 무슨 큰 힘이 있겠느냐, 정성만 다해라" 하셨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처럼,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일백골절에 힘이 쓰이는 정성이다. 기도의 대상인 진리의 위력에 대해서도 이해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나 부처님, 진리의 은혜와 위력에 대해 알고 느끼는 만큼 기도는 효력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빌어야 하는가'의 문제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는 누군가의 불합격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진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나 생사를 가르는 '전쟁'의 경우라면 그러한 주장도 과히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수행을 위한 기도나 참회기도,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유익이 되는 기도이다. 마음공부를 위한 기도나 부처가 되기 위한 기도는 정원이 있거나 승자와 패자가 있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하느님이나 부처님 입장에서도 들어주기에 크게 '부담'(?)은 없지 않을 듯싶다.

이미 자비와 위력을 갖추고 계셨던 예수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들도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우주의 위력을 십분 활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종교에 맞는 기도생활을 통해 천지의 위력을 지혜롭게 활용해 가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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