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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정말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했을까

[LA중앙일보] 발행 2015/12/15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12/14 18:19

이종호/논설위원

#.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혁신'을 내걸고 들어간 당이지만 끝내 아무런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탈당 발표 이후 온라인 댓글창이 뜨겁다.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선명 야당 기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지만 야권 분열로 여당 좋은 일만 시켰다며 야당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렇게 분열은 나쁜 것이라 여기는 이들의 잠재의식 속에 스며있는 역사적 명제가 하나 있다. '당파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 말은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다. 한국인은 단합할 줄 모르고 다툼과 분열이 민족성인 것처럼 주입시켜 저항의지를 꺾고자 일본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그릇된 논리다. 그럼에도 한번 심어진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가 당쟁이나 분열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다.

#. 요즘 한국사 책엔 당쟁이나 당파싸움이라는 말보다는 '붕당정치'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당쟁이나 당파싸움이 풍기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붕당(朋黨)은 학문적 유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정치 그룹을 지칭하는 용어다. 붕당의 출발은 학문이나 사상적 유대였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같이 했다는 점에서 요즘의 정당과도 일맥상통한다. 붕당의 발생 배경을 간단하게나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은 전쟁 없이 비교적 평화적으로 출범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건국 초기 피의 숙청은 피할 수 없었다.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를 열 때도 그랬고, 그 아들 이방원이 두 차례 왕자의 난을 통해 보위에 오를 때도 그랬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 힘을 보탠 공신들은 부와 권력을 장악하며 훈구파가 됐다. 반면 밀려난 이들은 조용히 낙향해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사림파다.

지방에서 힘을 키운 사림파는 9대 성종 때부터 서서히 중앙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훈구파를 밀어내고 조정을 장악했다. 동시에 사림파의 분열도 시작됐다. 선조 때 맨 먼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고,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졌다. 조선 중기 이후 돌아가며 권력을 잡았던 이들 네 개의 붕당을 사색당파(四色黨派)라 한다.

우리는 사색당파의 폐해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사화(士禍)라는 보복정치로 상대 당파의 씨를 말렸고, 백성이 굶주리든말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안위만을 찾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또한 일제 사학자들의 주장이지만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붕당정치의 긍정적 측면 또한 적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다. 무엇보다 특정 가문이나 공신 집단의 독주를 견제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소수의 의견도 국정에 반영되는 기회가 됐다는 점도 있다.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현종-숙종-영조-정조 때가 상대적으로 민생이 안정됐을 뿐 아니라 조선 제2의 문화부흥기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붕당정치가 무너지고 안동김씨 등 특정 가문이 조정을 좌지우지한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부터 조선의 국운이 기울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붕당정치의 긍정적 측면은 더 분명해진다.

#. 다시 안철수 탈당으로 돌아가자. 정치인이 이론이나 노선이 다르다면 갈라서는 것이 당연하다. 화합과 일치가 좋다지만 부부도 아닌데 참고 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분열과 대립이 전혀 없는 상태는 과거 전제군주 시대, 혹은 일당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안 의원의 탈당은 야권 분열이라는 냉소적 시각보다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담아 낼 수 있는 새로운 정파의 태동이라는 기대로 바라보고 싶다.

그의 탈당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 정실주의로 변질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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