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칼럼 20/20] 글쓰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

김완신/논설실장

소설가 김영하는 제3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으면서 "(작가는) 글만 안 써도 되면 참 좋은 직업인데 말이야"라는 말로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그는 농담같지만 이 말에는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그래서 괴롭다"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고백했다.

1995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은 작가다. 이상문학상을 비롯해 대부분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면서 작가적 역량의 최고조를 보이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글쓰기는 괴로운 일이다. 작가라는 호칭은 매력적이지만 창작은 고되고 힘든 작업일 수밖에 없다.

작가도 괴롭다는 글쓰기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주에서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글을 마주하는 한인들이다. 자기 만족에 글을 쓰기도 하고, 미래의 작가를 꿈꾸기도 한다.

중앙일보 논설실이 주최한 제4차 글쓰기 강의가 지난 주에 끝났다. 이전과 다르게 강의 횟수를 4회로 늘리고 많진 않지만 수강료까지 받았다. 신문사는 작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고 그런 자격도 없다. 다만 바른 어법으로 정확하게 뜻을 전달하는 기사를 생산하는 곳이다. 강의를 개최한 뜻도 바른 글쓰기의 홍보에 있었다. 감성적인 글, 주장하는 글, 통보하는 글, 설득하는 글, 그리고 나아가 문학작품도 결국은 바른 글쓰기의 기본에서 응용되기 때문이다.



강의를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참가자들의 열정이었다. 40여명 수강자를 대상으로 4주간 진행됐는데 마지막 강의까지 100% 가까운 출석률을 보였다. 어바인 등외곽지역에서 긴 시간을 운전해 참여하기도 했다. 노년의 참가자들도 많았다.

수강자들은 남들에게는 없는 글쓰기에 '가장 좋은' 장점을 갖고 있다. 소설가는 고료를 받고 작품을 쓰고, 기자는 월급을 받고 기사를 쓴다. 그런데 수강자들은 명예나 보수를 생각하지 않고, 글이 좋아 쓰는 사람들이다. 자발적 동기와 순수한 열정보다 더 강력한 '글재주'는 없다. 문법이나 맞춤법의 맞고 틀리고는 차후 문제다.

참가자 중에는 기성 문인도 있었다. 아파트 관리협회 뉴스레터를 잘 만들어 보겠다는, 후손에게 직접 쓴 자서전을 남기고 싶다는 수강자들도 있었다. 갖가지 이유로 다양한 계층에서 참여했지만 열성만큼은 한 가지였다. 우리글에 대한 사랑으로 글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다.

한인커뮤니티의 중심이 1세대에서 2, 3세대로 이동하면서 한글은 점점 소외되고 있다. 미주문인들의 연령층도 높아졌다. 자생적으로 젊은 문인들이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인구는 고령화되고, 영어권에서 자란 후세들에게 한글의 필요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글을 쓰고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생업이 되지 못하고 여기에 영상과 인터넷 매체의 활성화는 글쓰기 작업을 진부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지금도 외롭게 백지의 빈칸을 채우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글을 쓰는 것에 아무런 보답이 없어도 스스로의 기쁨에 펜을 든다. 글이 조금 서툴러도, 조금 투박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쓰는 즐거움이 담겨있는 글은 모두가 소중한 작품이다.

작가 겸 예일대 교수였던 윌리엄 진서는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실제로 어렵기 때문"이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어려운 것의 하나가 글쓰기"라고 말한다. 진서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기자로 시작해 평생 글을 쓰고, 지도해 온 작가다. 그의 저서 'On Writing Well'은 작문의 고전으로 미국에서만 150만부가 판매됐다. 지난 5월 윌리엄 진서가 향년 92세로 별세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진서는 글쓰기의 '명료함' '평이함' '간결함' 그리고 '인간미'를 보여준 작가라고 평했다.

'괴롭고' '어려운' 글쓰기에 순수와 정열로 나선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