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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냥 볼 수 있으면 이미 성자다

[LA중앙일보] 발행 2015/12/22 미주판 28면 기사입력 2015/12/22 01:05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한껏 타오르든 노을이 점차 서산 너머로 잦아들고, 서느런 바람을 타고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 이윽고 먼 하늘가로부터 별들이 다투듯 총총해진다. 고적한 박모의 시간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 중에서)

산허리 초막에 가부좌를 틀고 깊어가는 밤을 따라 곰곰이 잠기면, 저마다 자태를 뽐내든 별들은 어느덧 점점이 흩어져 아스라이 스러지고, '나'는 그새 죽음 같은 어둠과 함께 '무(無)의 성궤' 속으로 장렬히 산화한다. 처연하나 아름답다.

그 성궤는 궁극으로, '하나도 없으면서 다 있는' 영원한 생명력을 담지한 진공묘유(眞空妙有)이며 진여(眞如)의 세계다. 진여는 부당한 개입이 배제된 모든 현상의 여여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자, 모든 차별과 대립이 소멸된 본디 갖추어진 청정한 마음상태이다. 그것은 화석화된 에고의 껍질을 깨고 나온 대자유의 경지이다. 그로써 무너진 경계로 하여 '타자는 지옥'이 아니라 '또 다른 나임'을 자각한 '한 소식'의 장이며, 자연과도 합일되는 경지이다. 절대평온의 세계다.

그리하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수연불변(隨緣不變) 인연의 흐름을 따르되 변하거나 물들지 않으며, 임운무작(任運無作) 투명한 자연에 운영을 맡겨 터무니없는 인위적 조작 없이 스스로 그러한 대로 내버려두되, 담담히 관조할 수 있는 순일하고 청정한 마음의 눈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장자는 '황새다리 길면 긴 대로, 뱁새다리 짧으면 짧은 대로'라며 무위를 노래했다. 자기잣대로 보아 지나치게 길거나 짧다싶은 다리가 못내 거슬려, 공연히 황새다리 조금 잘라 뱁새다리에 붙여 맞추려는 인간의 억지를 경계한 것일 터.

길면 긴 것을, 짧으면 짧은 것임을 알고, 분노나 갈애, 좋다거나 싫다는 생각이 일면 일어난 것을 알고, 사라지면 사라진 것을 '다만' 알뿐, 일어난 생각에 애착과 배척을 떠나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담연한 항심(恒心)이 진여의 작용이다.

아서라, 그러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꽃잎이 휘날리면 날리는 대로, 낙엽이 구르면 구르는 대로, 그냥 내버려둘진저.

여실지견(如實知見) 이 기별은 불가의 황금률이다. 주관적 편견에서 해방되어 왜곡, 굴절 없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알 수 있다면 그는 자유인이다. 그는 이미 성자이다.

"산집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하고 고요함이 본래 모습일세/ 무슨 일로 서풍은 잠든 숲을 깨우는가/ 한소리, 찬 기러기 울음소리 장천을 울린다"(야보도천 선사의 '무제')

대저, 무량한 번뇌와 망념이 소용돌이치는 무서운 질곡의 강을 건너 진실로 자유를 얻은 자는, 결코 두려울 것이 없기에, 눈물 흘리지 않고 세상을 누리며 이승을 건너갈 수 있음이라.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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