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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꼭 하고 싶었던 한 마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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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5/12/26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5/12/25 22:23

오세진/사회부 기자

친구의 메시지를 받고 벌인 일이다. 연말 기획시리즈 '전하지 못한 이야기' 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대신 전합니다"라며 독자의 사연을 기사와 영상 편지로 소개하는 코너다.

친구는 여자다. 초등학교 6학년때 요즘 말로 '썸'을 탔던 사이다. 당시 친구는 마음이 담긴 편지를 건넸다. 학창시절에 받은 연애 편지 1호다. 밸런타인스데이에는 정성들여 초콜릿을 만들어 줬다. 방과 후에는 육상부 훈련이 있었는데, 그는 늘 응원석을 지켜줬다. 시합 날에는 경기장까지 찾아와 목청껏 파이팅을 외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 나쁜 남자다.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더구나 다른 여자 아이가 좋다며 친구 마음에 상처를 냈다. 한 번은 쉽게 마음을 접지 않는 친구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이후 말 한 마디 없는 사이가 됐다. 두고두고 후회했다. '고맙고 미안했다'는 사과 한 마디만 했어도, 그 시절 이야기는 언제든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애틋한 추억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 마주하면 꼭 사과해야지'라고 마음 먹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마주쳐도 모른 척, 어색하게 남았던 관계는 곧 끊어졌다.

2015년 12월 1일, 하루 종일 웃음 짓게 하는 일이 생겼다. 친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을 해 오면서다. 18년 만이다. 친구는 언제 불편한 일이 있었냐는 듯 자연스레 안부를 전했다. 정말 기뻤다. 간절히 찾고 싶었던, 잃었던 소중한 보물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잘 쌓은 관계는 보물과 같다'는 일본 작가 노사카 레이코의 말이 실감이 났다.

문득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누구나 꼭 하고 싶었던 말 한마디를 못해 끙끙 앓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하지 못한 이야기' 시리즈를 시작했다.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를 대신 건네 '관계'란 잃었던 보물을 되찾을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에는 감동이 있었다. 24일 현재까지 총 10개의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중앙일보를 통해 전달됐다. 응선씨에게 '짝사랑했었다'고 고백한 소진씨는 사랑을 이뤘다. 솔직한 고백을 들은 응선씨가 오히려 소진씨에 더 빠져 산다. 이혼 후 전 시어머니에게 '그래도 고마웠다'는 메시지를 전한 지연씨는 얽히고설켰던 오해를 풀었다. 늘 떨어져 살았던 아빠에게 '아빠를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다은씨도 답장을 받았다. 아빠는 다은씨에게 '고맙다. 아빠가 힘이 되어줄게'라고 보냈다.

장학금을 준 한인 사회에 감사함을 표한 시각장애인 대학생 찬희씨는 '우리가 더 응원할게요'란 메시지를 받았다. 아내에게 '마음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라고 고백했던 원석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멋진 남자'로 일약 스타가 됐다.

영상과 신문 기사를 챙겨봤다는 한 독자는 "쑥스러워 사연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인연을 끊었던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평생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얘기를 드디어 했다.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지금 용기를 내면 된다. 중앙일보 기사를 통하지 않아도 좋다. '고마워, 미안해, 좋아해, 보고싶어….' 어떤 말이든,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18년 만에 연락을 준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다예야. 어린 내가 참 못됐었다. 먼저 용기를 냈어야하는데, 미안. 많이 그리웠어. 곧 다시 만나 함께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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