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업] 환자가 선물한 연주곡 '샤콘느'
모니카 류/암방사선과 전문의
그래도 놀랍고 고마운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참아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이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에게도 방법이 있다면 이런 마음이 전해지기 바란다.
나에게 자신이 연주한 바이올린 곡이 담긴 테이프를 건네주었던 유대인 노인 환자가 생각난다. 생존해 있다면 100살은 넘었으리라. 그는 한 쪽 눈에 임파암이 생겨 나를 찾았다.
일반적으로 그냥 '눈'이라고 말하지만 의학적으로 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안구가 있고, 안구가 자리잡고 있는 안구집이 있다. 안구집에는 안구를 움직일 때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양쪽 눈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근육이 있고, 시신경, 눈물샘, 렌즈를 보호하는 막도 있다. 임파암은 안구에도 올 수 있고 안구집에도 생길 수 있다. 그 환자의 임파암은 완치됐지만 방사선 부작용으로 눈 주위에 있는 눈물샘과 예민한 조직들이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치료가 끝난 후 두번 째 나를 찾아 왔을 때 그 노인이 유대인이고 바이올리니스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눈이 아프고 눈물이 많이 흘러서 악보를 보기 힘들어 연주가 어렵다며 나에게 테이프 하나를 건네주고 갔다.
그 테이프에는 환자 자신이 연주한 바흐의 '샤콘느'가 들어 있었다. 15분 분량의 슬프고 어려운 곡이었다. 바흐를 좋아했지만 당시 나는 음악이 전하는 고통, 슬픔, 영적 갈등을 껴안을 만한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그후 다시 노 연주자가 병원을 찾아 왔을 때 나는 건성으로 감사를 표시했고 그후 테이프를 치웠다.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바흐에 대해 읽다가 우연히 '샤콘느'에 대한 글을 접하게 됐다. 바흐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곡이 쓰여진 사연은 이랬다. 바흐가 섬기던 레오폴드 왕자와 함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다. 아내는 이미 땅에 묻힌 후였다. 그녀는 36세였다. 그때 바흐가 쓴 곡이 '샤콘느'라고 한다. 슬프고 아프다. 영적인 고뇌와 갈등이 복잡하게 얼켜있다.
지금은 이 곡이 나에게 말하려는 삶의 애환, 고통, 영적 갈등을 이해한다. 나아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오는 위로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자꾸 듣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또 이 곡은 환자들의 말 없는 호소를 들을 수 있게도 한다.
그 환자가 주었던 테이프를 찾아야겠다. 그리고 그의 연주를 다시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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