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79.0°

2019.09.15(Sun)

[뉴스 포커스] 너만 갑이냐, 나도 갑이다

[LA중앙일보] 발행 2016/01/1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1/09 19:16

김동필 / 선임기자

#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던 지난달 말 한 한인마켓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계산대 앞의 줄이 짧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말이라 평소에 비해 고객이 많기도 했지만 계산대의 일부만 오픈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업소 측은 속이 탔지만 계산대를 담당할 직원이 없다보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직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충원할 시간도 없었다. 놀랐던 것은 마켓 관계자가 전한 퇴사 이유다. 처우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일부 진상고객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세일기간이 끝난 품목을 들고 와서는 왜 할인해 주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리는가 하면, 계산이 잘못 됐다며 무조건 화부터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이런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며 떠났다는 것이다.

# LA한인타운의 쇼핑몰에 입주했던 한 업주는 폐업을 했음에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 1년이 넘게 울며 겨자먹기로 '적자영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임대 계약기간 때문이었다.

도저히 운영이 힘든 상황이라 건물주에게 하소연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문을 닫더라도 일정 기간의 임대료는 지불하겠다는 절충안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멋대로 폐업을 할 경우 소송을 해서라도 피해보상까지 청구하겠다는 압박만 받았다. 빈 업소가 생기면 몰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새 입주자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알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주자의 어려운 사정도 조금은 헤아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 영업부서에서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너무도 기가막힌 일을 겪었다. 새해도 되고 해서 계약연장 등을 위해 거래처에 전화를 했더니 다짜고짜 욕설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동안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통화 중 언성을 높일만한 내용도 없었는데 황당할 따름이었다. 백번 양보해 '다른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다'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직원은 며칠간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갑질'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행위를 비난할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최근에도 논란이 된 몽고간장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폭행사건'처럼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악용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그런데 이런 횡포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몽고간장 명예회장 사건도 운전기사와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발단이다.

두 사람은 임금을 매개로 한 계약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지 봉건시대의 주종관계는 아니었다. 운전기사는 애초부터 명예회장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갑질'의 오류는 꼭 굉장한 재력가나 권력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앞의 사례들을 보면 보통사람에게도 '갑질'의 개연성은 내포되어 있다.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한 위치라고 생각되면 쉽게 그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관계에는 상대적인 요소도 작용한다. 그중 한 가지가 강자와 약자의 관계다. A에게는 강자의 위치에 있지만 B에게는 약자가 되기도 한다. 또 이런 구도가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강자일 수 없듯이 영원한 약자도 없는 셈이다. 마켓의 진상고객도, 쇼핑몰 주인도, 거래처 사장도 돌아서면 약자의 처지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갑을관계'는 계약서 작성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계약 당사자들을 편의상 갑과 을로 표현하는 것이지 강자와 약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과 열정,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는 붉은 원숭이해인 올해에는 '갑을관계'가 본래의 의미를 찾았으면 좋겠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