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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아버지를 생각하며 미소짓는 이유

[LA중앙일보] 발행 2016/01/16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6/01/15 19:03

장열/사회부 차장·종교담당

1월16일은 제게 뜻깊은 하루입니다.

10년 전 오늘은 아버지가 천국에 가신 날입니다.

글을 쓰기 전 잠시 아버지의 사진을 봤습니다. 지난 추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아버지의 멋진 모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실 지금이야 웃을 수 있지만 그땐 참 힘들었습니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을 때는 그 어떤 것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도 해봤고, 아버지가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나름 진실한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눈을 감았습니다. 전 그 결과(죽음)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유를 찾으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신이 있다면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허락했는지 말입니다.

질문은 오랜 시간 계속됐습니다. 사색을 위한 여행도 떠나봤고, 여러 책도 읽었습니다. 지인들과 밤을 새며 대화도 나눴습니다.

그래서 답을 찾았을까요. 아니요. 신은 저에게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삶이란 건 참 오묘합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답을 구할 때는 알 수 없다가 어느 날 한참 시간이 흘러 무심코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는데 많은 부분이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겁니다.

물론 제 경우와 달리 신은 인간의 물음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답을 획득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어떤 일은 평생 그 이유를 모르고 살다가 그대로 눈을 감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신이 존재하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지식과 경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제한적인 인간의 사고가 신의 뜻을 다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만약 하늘의 섭리가 인간의 이성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다면 신의 존재는 무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사람 스스로 전지전능해질 수 있겠지요.

인생길은 꼭 모든 게 납득 돼야만 걸어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보이는 게 전부도 아니고, 보이는 걸 그대로 볼 수도 없는 게 인간입니다.

저 높은 하늘을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땅에서 보면 매우 느리게 지나갈 뿐입니다. 수십만 개의 세포가 몸 안에서 움직여도 피부에 가려 볼 수 없는 게 시각의 한계인데 세상 모든 이치를 어찌 완벽하게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한의 존재인 신 앞에서 유한한 인간이 단순히 체념하며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의 답이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 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보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보이는 종교의 역설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를 겸손케 하고, 매일의 삶을 허투루 살 수 없게 합니다. 인생을 주도하는 것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희로애락의 인생길을 사유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서 복을 빌며 행복한 한 해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앞길에 꼭 기쁨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슬픔도 공존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올 한해 설령 이해되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웃을 날은 다시 올 겁니다.

제가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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