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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헬조선 탈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오세진/디지털부 기자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요즘 부쩍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좋겠다", "부러워", "나도 미국 가고 싶다."

가장 친한 친구도 지난 주말 모처럼 통화를 했는데 이렇게 말했다. "좋겠다. 미국은 숨통이 좀 트이지 않니? 여기(한국)는 그저 답답해. 매일 한숨만 쉰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대학 후배도 최근 연락이 왔다. 한다는 소리가 또 신세한탄이다. "오빠. 또 탈락이에요. 취직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네요. 헬조선에서 스트레스만 받다 죽을 것 같아요. 부러워요."

헬조선. 헬조선은 한국의 옛 명칭인 조선에 지옥이란 뜻의 접두어 헬(Hell)을 붙인 합성어다. '지옥 같은 한국'을 뜻하는 말로 울분과 냉소가 섞인 표현이다.

2030세대 청년층이 이 말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닦달하는 주입식 교육, 느닷없이 불려가 고생하는 군대, 일자리를 잡지 못해 눈치만 보는 취업난, 꿈 같았던 결혼과 육아는 그저 꿈으로만 남아있는 현실, 또 인간 존엄성이 없는 대한민국 사회를 비꼬는 말이다. 청년실업, 자살률, 노동 강도, 외모지상주의, 국회의원의 자녀 취업 청탁,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등 현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도 헬조선 범주에 포함된다 .



그렇게 한국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젊은이들은 한번쯤 '탈출'을 꿈꾼다. 미국으로 유럽으로, 한국사회와는 다른 분위기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친구와 후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미국생활 사진을 한 장이라도 올리면 "나도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댓글이 사진 아래 공간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감히 조언을 하고 싶다. "탈출도 명확한 답은 아니다"라고.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 삶의 터전을 잡은 지인들의 생각도 공통적이다. "노력은 해봤나"라고 막말을 던지는 꼰대들의 말을 대변하겠다는 건 아니다. 타국에서의 삶을 무작정 동경하고, 구체적 계획과 목표 없이 외국 생활을 시작하려는 태도에 '한 번쯤 다시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싶다는 거다.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어디서든 더 나은 삶을 꾸리고 싶다면 한국에서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완벽한 외국어 구사, 타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주류 사회에 진출하려면 자국민을 제치고 한국에서 온 외국인을 채용하고 싶을 만큼 뛰어난 능력도 필요하다. 타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그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그 곳의 현실을 따져 정확한 목표를 설정해야만 후회 없는 '탈출'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헬조선 탈출을 시도해 미국으로 건너 온 젊은이들의 삶을 자주 목격한다. "여기는 더 낫겠지"란 생각으로 무작정 건너 와 새 삶 개척에 도전한 이들은 더 큰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해 대학을 갓 졸업하고 LA로 왔던 20대 여성은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한 유대인 가정의 유모로 들어갔다. 몸은 고되도,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우겠다는 의지로 도전한 일이었다. 하지만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또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다 쫓겨났다. 심지어 절도범으로 몰려 갖은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28세 남성의 사례는 그나마 무난했다. 한국계 대기업에 취업해 왔다. 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을 사는 소득 수준, 주류 사회 진출의 큰 벽, 잔존하는 인종차별을 실감하고는 지난달 되돌아갔다. 남성은 "되는 대로 받아주는 회사에 취직한 게 실수였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한국의 힘든 상황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가기만 하면 술술 풀리는 곳은 없다.

마음이 무겁다. "그러면 어쩌라고요"라고 묻는 후배에 더 이상 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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