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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짤짤이 순례길'에 나선 노인들

부소현 / JTBC LA특파원·차장

20여년 전쯤 버스를 타고 독립문 근처를 지날 때였다. 연세가 높아 보이는 할아버지 몇 분이 꽤 빠른 속도로 뛰는 모습을 보고 친구와 "할아버지들이 우리보다 잘 뛰신다"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차가 밀려 버스 속도와 비슷하게 달린 할아버지들이 멈춰 선 곳은 노상에 차려진 노인 무료 급식소. 긴 줄 끝에 간신히 다다르자마자 얼마나 가쁜 숨을 몰아 쉬시던지 버스 안에서도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친구와 주고 받은 가벼운 말이 부끄러워 등에 진땀이 흘렀다.

지난 22일 JTBC 뉴스룸에서 '가난한 노인들의 하루'를 조명한 리포트가 방송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인 우리나라의 현주소는 20년 전 버스 안에서 봤던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리포트에서는 영하 섭씨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 속에 종교단체에서 나눠 주는 500원 동전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노인들의 고단한 일상이 다뤄졌다. 일주일에 한번, 선착순에 한해 노인들에게 먹을거리와 500원을 주는 성당 앞에는 새벽부터 끝도 없는 줄이 늘어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추운 거리로 나온 노인들 틈에서는 서로 빨리 동전을 받기 위해 자리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둘러 자리를 옮겨야 동전을 나눠주는 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른바 '짤짤이 순례길'로 모은 돈으로 노인들이 전기, 수도료를 내고 손자들 끼니를 챙긴다고 설명했다. 한 푼이라도 모아서 병원비하고 약값하고 밥 못 먹으니까 하다못해 두부 한 모라도 사겠다는 85세 할머니. 방세 마련을 위해 나왔다는 할아버지의 사연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노인들의 참담한 현실을 담은 리포트는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 내용은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도 다뤄졌다. 손석희 앵커는 "노인 1000명 중 16명은 백세인생을 살게 됐다는 통계가 나왔고 나라경제를 위해 노인우대 기준을 높이자는 논의마저 나오고 있는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게 '나이 듦'은 은빛의 연륜, 존엄과 따사로움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해야 할 차가운 현실이었다"며 한 시청자가 보내온 이메일을 소개했다.

"2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 하든 찾아뵙고 청소나 반찬이라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시청자의 진심 어린 마음에 손 앵커는 이번에도 또다시 국가가 아닌 개인이, 시민들 스스로 가슴 아픈 이 현실들을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2016년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견뎌내고 있는 하루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일부 가난한 노인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한국 노년층의 상대빈곤율은 49.6%. 노인 두 명 중 한 명은 빈곤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니 일부 노인들의 문제라고 하긴 어렵다.

"가난에 찌들어 눈빛도 바랬고 온 얼굴 가득 주름살 오글쪼글 지하철 공짜로 타는 것 말고는 늙어서 받은 것 아무것도 없네…." 앵커브리핑 말미에 소개된 김광규 시인의 '쪽방 할머니'의 한 구절이다. 해마다 쪽방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한국 뉴스의 단골 아이템 중 하나다. 언제쯤이면 이 애달픈 모습을 보며 '맞아 저런 시절도 있었지' 하게 될까?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전력 질주하던 할아버지들을 봤던 20년 전 독립문 근처의 모습은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변했건만, 한때 한국 사회를 짊어졌던 노인들의 일상은 오늘도 고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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