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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자기잣대'라는 덫

[LA중앙일보] 발행 2016/02/02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6/02/01 18:03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나룻배가 삿대를 거두어야할 만큼 꽤 깊은 물로 들어서자, 사공은 노로 바꾸어 잡고 익숙한 솜씨로 젓기 시작했다. 배에는 불혹 즈음의 낯선 선비만이 이물 쪽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그때까지 늙은 사공의 남루한 몰골을 멀거니 바라보던 선비가 뜬금없이 사공에게 말을 걸어왔다.

"흐흠! 이보시게, 혹여 공자나 맹자의 함자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생뚱맞은 선비의 물음에 "아이고 이 무지랭이가 무신 말씀이신지…" 사공이 말끝을 흐리자 "그럴 테지" 선비의 입에 문 말이다. "객쩍은 소릴 했네만 그나저나 사공은 그간 꽤나 많은걸 잃고 산게지"

"아, 본시 쌍것이니 잃고 말고가 있것습니까요 허허"

사공은 괜한 헛웃음을 흘린다. 사공의 자조 섞인 대꾸에 선비의 말 품새가 금세 조롱기마저 배어있다.

"그래 그 뭣이냐 시조란 걸 한 줄 귀동냥 해본 적은 있고?"

"글시요 지 이름자 간신이 그리는 까막눈이라"

"쯧쯧 그러고 보니 인생의 반은 놓치고 산 셈일세"

"허허 반이믄 후하신거시제. 놓치고 산게 우째 반 뿐이것소"

사공의 말꼬리가 살짝 꼬였다. 이어지는 선비의 언사가 이제는 아예 말뚝을 박듯 한다.

"보아허니 한양 나들이는 여태 해본 적이 없을 테고"

"아! 이녁이 몸 빠져나오고 평생을 강 언저리서 물노릇만 하고 산 놈이외다 한양은 무슨 놈에…"

애써 부아를 삼킨 말투다.

"그렇지 한 세상 축생처럼 사는 몸이 어디 한 둘일꼬"

선비는 텅 빈 눈길을 강 저 편 언덕으로 보낸다. 바람결에 묻어온 선비의 혼잣말에 사공의 억누른 말이 끝내 배알을 토하듯 한다.

"암! 이리 몸땡이 굴리다가 가야것제 이 육실헐 인생!"

늙은 사공은 오늘따라 노를 타고 오르는 물 힘이 많이 버겁다.

불편한 침묵 속에 배는 그럭저럭 강심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터져 나온 선비의 비명이 허공을 찢고 강바람에 날아갔다. 낡을 대로 낡은 배 바닥의 틈이 벌어지며 강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발밑에서 자박자박하던 강물은 널빤지들이 뜯겨져 나가면서 순식간에 나룻배를 휘감았다.

덮치는 강물에 뱃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선비가 새파랗게 질린 목소리로 악을 쓴다.

"사공! 사공! 나 헤엄 못 쳐!" 그러나 그 절규와는 아랑곳없이 사공의 매몰찬 목소리가 선비의 귓전을 때린다.

"아이고 쥐새끼도 헤엄 질을 허는 판에 그래 그 잘난 먹물 값도 못하는 저 꼬라지 좀 보소! 선비양반 어쩌것소 인자 선비나 나나 한 시상 몽땅 끝장나게 생겼구마!"

선비는 이미 눈이 허옇게 뒤집혀 물속에서 꼴깍대고 있었다. 때를 놓칠세라, 사공은 노를 황급히 빼내 선비의 손에 쥐어주며 다지듯 소리쳤다.

"씰데없이 나부대지말고 그냥 물 흐름에다 몸을 맡기슈! 지가 뒤 따를꺼구마" (독일 구전설화의 번안임)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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