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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복음, 다른 손엔 민족을 붙들다

[미주 독립운동사 '잊혀진 애국'] 목회자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 미주에서 10명 서훈
'십자가 부활'과 민족사상 융합
2세 한글 교육해 애국심 고취
미 국무부의 국민회 승인 받고
독립자금 지원ㆍ임시정부 가입
2차 세계대전 종신목사로 참전


미주 지역 독립운동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어느 단체보다 중요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초 하와이 전체 한인 가운데 50%가 기독교로 개종했다. 또 공립신보에 따르면 1907년 3월 현재 북미지역 거주 한인 500여명중 40%가 기독교 신자였다.



인물과 단체의 많은 독립운동들이 당연히 초기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미주 최고 독립운동기관인 국민회는 1909년 창립 당시 샌프란시스코 한인감리교회가 전적으로 후원했다. 또 대한인국민회가 1938년 4월 LA로 이전할 때에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크고 작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목회자들에게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다. 복음을 전해야 했고, 민족을 논해야 했다. 십자가와 부활 등 기독교 신앙의 핵심사상을 민족주의적으로, 사회복음적인 의미에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글학교를 세워 어린 세대에게 민족의 언어와 혼을 전해주고 의식계몽운동에도 힘썼다.

미주지역 독립유공자 215명중에는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한 한인 목회자들이 10명 포함됐다. '미주독립유공자 전집'의 저자 민병용 한인역사박물관장은 10명의 목회자중 이대위 목사, 송헌영 목사, 윤병구 목사 3명의 목회자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이대위 목사에 대해서는 "안창호 다음으로 가장 훌륭한 민족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이대위 목사는 평양 기독교학교인 숭실학교를 다니며 신자가 됐다. 1903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온 그는 상항감리교회와 북가주 일대에서 민족목회를 펼치는 한편, 신한민보를 복간해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에 힘썼다. 뿐만 아니라 대한인국민회 미주 총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미국 국무부로부터 국민회를 임시정부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1915년 그는 미주 언론역사 사상 최고의 발명품도 내놨다. 당시 신문은 활자를 일일이 손으로 찾아 조판을 해야 했다. 그 비효율성을 없애려 174개의 활자로 최신 인터타입 한글 식자기를 만들었다. 주류 언론도 그의 발명을 높이 샀다. 데일리 팔로 알토 타임스는 1917년 9월 '단순한 동양글자'라는 제목으로 "한국 알파벳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들어지고 동양식 타이프 기계가 제작된 것은 이 세기의 위대한 진전"이라고 썼다.

담임목사로서 국민회 총회장으로, 언론인으로 활약하던 그는 1928년 6월17일 쉰의 젊은 나이에 샌프란시스코 병원에서 별세했다. 숨지기 전 그의 유언은 "동포들은 다 평안하지요. 보고 싶어요"였다.

다른 목회자들도 사명을 잊지 않았다. 송헌주ㆍ윤병구 목사는 1907년 7월 초순 광무황제의 밀명을 받아 헤이그 만국회의에 참석한 이준, 이상설, 이위종 밀사와 동행해 통역을 도왔다.

현순 목사는 임시정부에 관여해 미주와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앞섰다.

성공회의 조광원 신부는 하와이 한국독립당 지부를 이끌며 중국지역 특무공작과 한국 광복군 편성에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4년 9월 미 해병대 종군 신부로 사이판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목회자들이 독립운동에 임했던 사명은 신한민보 1918년 8월29일자에서 도드라진다. 이대위 목사는 기고문에서 국치일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국치일이란 한일합병조약이 발효된 1910년 8월29일이다. 100년이 지난 글이지만, 그 메시지는 지금도 울림이 강하다.

▶독립일을 기억하게 되면 이날은 자연히 잊으리라=우리가 지난달에 미국인의 독립일 7월4일을 기념하는 것을 보고 우리 민족도 장차 저와 같은 날을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감상은 미국에 있는 한인 마다 생겼을 터이다.

오늘 한인의 대치욕 되는 8월29일을 당한 이때에도 또한 우리 민족의 마음 가운데 이날이 속히 없어져야 되겠다는 감상이 자연 발생할 줄은 내가 확실히 아노라.

묻노니 우리 동족이여.

우리 나라가 무슨 연고로 타국인의 속지가 되며 우리 민족이 무슨 연고로 타국인의 노예가 되었는고? 다름아니요 우리가 우리의 직분을 다하지 않은 연고라. 그런즉 우리 나라의 망한 것을 놓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원망할 바가 아니라 하노라.

우리 인민이 자유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면 필경 타국의 멍에를 벗고 자유할 날이 있을터이오. 또는 타국을 호령할 때도 있을 것은 하나님의 정한 이치요 과거 역사의 증거하는 바라.

나라는 인민의 복리와 권리를 보호하는 큰 기관이니 그 근본은 개인을 회동하여 사회를 조직하고, 사회를 확장하여 정부를 설립하는 것인 고로.

국가를 보존코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과 사회와 국가를 동일하게 생각하되 그 중에 하나가 없어도 완전한 나라나 완전한 사회나 완전한 집이 되지 못하는 줄을 알아야 하겠다. 또는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줄을 생각하여야 될지라.

나라가 우리 몸의 한 지체요 우리가 나라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하는지라. 그런고로 우리는 부득불 나라 없이는 이 세상에 생존할 수도 없고 우리의 자손이 타인의 노예를 면치 못할지니 우리는 이에 직분을 다하여 망한 나라를 다시 회복하고 이날 대신에 독립일을 기념하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출처=미주독립유공자 전집

정리=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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