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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평통 전·현직 회장들의 '수다'

[LA중앙일보] 발행 2016/02/10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2/09 19:43

"수다가 너무 길었네."

회장 중 한 명이 일어서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4일 LA한인타운 한 호텔 식당에서 이뤄진 LA평통 전현직 회장단 모임에서다.

'평균 연령 73세' 남자 7명의 이날 점심시간은 2시간을 넘겼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이야기는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회장단 스스로 수다스럽다고 여긴 이유다.

이날 오간 이야기들을 지면에 비중 있게 다뤘다. 기사가 나간 뒤 한 독자가 이메일을 보내 "기사가 너무 과했다"고 지적했다. '보수 수구 인사'들의 모임이 기삿거리가 되느냐는 항의성 메일이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기사 의도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날 모임은 한낱 '노인들의 수다'로 치부하기에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모임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그렇다. 회장단 모임은 이날이 두 번째다. 임태랑 현 회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전 '전임 회장들의 고견을 자주 듣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달에 전직 회장 7명을 초청해 첫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평통 35년 역사상 현직 회장이 전임 회장들을 모두 초청해 조언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번째 모임이 전직 회장들에 대한 예우였다면, 두 번째 만남은 현직 임 회장에게 더 절실했다. 요즘 평통 내부 몇몇 자문위원들이 내고 있는 잡음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모임 서두에 임 회장이 "도와 주십사 부탁드리려 모셨습니다"고 어렵게 말을 꺼낸 이유다.

문제 해결 접근 방법으로 강경 대응이 아닌 '대화'를 선택한 셈이다. 임 회장 입장에서는 밥 먹는 자리 한번 만들었을 뿐인데 돈 주고 살 수 없는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모임에 임하는 회장들의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다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통상 전임과 현직 회장은 격식과 체면 때문에 안부 인사 한번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간섭하기 싫고, 간섭받기 싫은 탓이다.

그러나 이날 참석자들은 간섭이 아닌 진심어린 조언을 했고, 곡해 없이 받아들였다.

전직 회장들답게 대화를 풀어가는 방법도 노련했다. 한 명이 주제를 꺼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받았고, 또 다른 주제를 던지면서 대화가 순환됐다. 예를 들어 "골프 요즘 쳐?"라는 질문에 "와이프 아프고 나서는 힘들지"로 답해 노년의 건강 문제로 주제가 넘어가는 식이다.

물론 북핵 문제로 넘어가자 서로 다른 통일관 때문에 참석자들간 의견이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자 한 전직 회장이 능숙하게 중재했다. "앞으로 이 모임에서는 제안만 하지 내가 옳다는 언쟁은 피하면 좋겠습니다."

모임의 백미는 마지막 결론이다. "청와대가 듣든 듣지 않건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한국에 보고해 정책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였다. '도대체 평통이 뭐하는 단체냐'는 그간의 질타를 불식시킬 수 있는, 본분을 잊지 않은 합의였다.

이날 2시간 동안의 '수다'를 지켜보면서 전임 LA총영사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는 "조직의 힘은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고 했다. 다른 조직이 안건의 실행여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축적된 경험'을 가진 조직은 한발 더 나가 '언제, 어떻게 실행할까'를 고민한다. 전현직 회장들의 수다는 그 축적된 경험의 전달과 수용의 시작이었다.

수다의 어원을 찾아봤다. 고대 인도어 '수트라(Sutra)'라는 설이 설득력 있다고 한다. 수트라는 불교의 경전을 뜻한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수다라'로 바뀌고 수다로 변했다는 설이다. 어원대로라면 '수다'는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인생 깨우침의 수단이다.

다른 한인 단체장들도 평통처럼 전현직 회장단 모임을 도입했으면 한다. 체면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면 '축적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회장들의 수다는 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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