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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휴대폰 사진기와 이차크 펄만 공연

부소현/JTBC LA특파원·차장

'저장공간이 부족합니다.' 요 며칠 휴대폰을 켤 때 마다 뜨는 메시지다. 저장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천여장의 사진들. 수시로 필요없는 사진을 삭제하긴 하지만 새로 찍는 수를 당해내기 힘들다.

이제는 필수품이 돼버린 스마트폰의 사진 기능이 날로 향상되면서 24시간 고성능 카메라를 지니고 다닐 수 있게 된 현대인들의 삶은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 위에서 셀카 한방. 운전을 하다 차가 막혀도 한 컷. 왠지 다르게 보이는 하늘을 놓칠세라 일단 찍어 놓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나오면 휴대폰 카메라 렌즈부터 들이댄다. 이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무턱대고 휴대폰 셔터를 누르다 보니 사실 왜 찍었는지 언제 찍었는지, 누구랑 함께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의미없는 사진들도 많다. 일일이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한번 찍은 사진들은 좋건 싫건 고스란히 실물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보다는 몇배 더 신중(?)했고, 현상한 사진들에 대한 애정도 훨씬 더 각별했다.

그러나 요즘 사진은 나만의 추억을 위한 것이기 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인 경우가 더 많다. 소셜미디어에 올려 '좋아요' 버튼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일이 많다 보니 정말 중요한 찰나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카메라 렌즈에 양보한다.



최근 어릴 적부터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인 바이올린니스트 '이차크 펄만' 공연이 디즈니홀에서 열린 것이다. 한때 세계적인 바이올린니스트를 꿈꿨던 터라 펄만은 어릴 적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꼭 한번 직접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공연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놓치다 드디어 티켓을 확보했다.

어느새 백발이 된 그의 연주는 더 없이 훌륭했다. 공연이 이어지는 한시간 30여분 동안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 연주를 보고 듣고 느꼈다.

공연 중에는 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으니 오랜 시간 소원해 온 시간을 마주한 순간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눈과 귀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촬영에 대한 제한만 없었으면 너나 없이 공연을 보기 보다 찍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평생 보고 싶었던 공연은 그저 휴대폰 속 저장공간만 차지하는 사진 몇 장과 동영상으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날 공연의 여운은 더 진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사진이 아닌 가슴에 남았다.

취재를 다니다 보면 어디서건 휴대폰 카메라 먼저 들이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느라 정작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을 놓치는 것 같아 아쉽다. 직접 눈으로 보러 와서 왜 좋은 구경은 마다하고 사진 찍기 바쁜지 안타깝다.

게다가 애써 찍은 사진들은 저장공간이 부족해 삭제되거나 현상도 되지 않고 전원이 꺼진 휴대폰 속에 남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펄만의 공연을 가슴에 담고 나오며 디즈니홀 앞에 걸린 그의 공연 포스터 앞에서 한껏 포즈를 잡고 사진 한장을 찍었다. 비록 그가 공연하는 모습은 한장도 찍지 못했지만 먼 훗날 이 사진 한장만 봐도 평생 소원했던 공연에서 얻은 감동은 생생히 기억될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끈질긴 메시지도 없앨 겸 휴대폰 속에 저장돼 있는 사진들을 정리해 현상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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